이것은 원래 휴가였어야 했다. 5/1 노동절과 5/5 어린이날을 사이로 둔 날이 평일에 끼면 황금연휴가 된다. 일개미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다이빙투어를 떠나곤 했다. 6년 전엔 시파단을 5년 전엔 말라파스쿠아를그리고 5년 만에 다시 돌아온 황금연휴, 지금. 마지막 복지포인트로 배낭을 사서 오리발을 넣고 장비를 챙겨
필리핀 코론섬으로 다이빙투어를 왔다.경황이 없어 별다른 정보 없이 팀을 따라왔는데 와서 보니
한편 이 배에 얽힌 역사를 돌아보면 이거 맞다 실제 일어난 일이지 싶어졌다. 정말이다.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벌거벗은 세계사>를 보다가 이 사실을 시각적으로도 다시 확인했다.
한편 필리핀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산호다이빙은 별 볼 일 없었는데 이게 지구온난화, 엘니뇨현상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 슬퍼졌다. 5월에도 수온이 29도를 웃돌았는데 10년 전 처음 필리핀에 다이빙하러 왔을 때만 해도 안 이랬기 때문. 호주의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도 수온이 너무 높아져 백화현상으로 산호를 모두 잃었는데 필리핀의, 더 나아가 지구의 유효기간은 얼마나 남은 걸까 씁쓸해졌다. 참, 그리고 코론 해안가 말이지,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풍경이 참 심상찮았다.
코론 지프니터미널
들어보니 이 간척지는 필리핀 독재자 두테르테가 해안정비사업을 하면서 해안가 집을 다 밀어버리니 그 방어책으로해안 쪽으로 진행한 사업이라고 한다. 일단 간척은 했는데 이번엔 주정부 단위에 이슈가 생겨 아무것도 못하고 이렇게 매드맥스스러운 황량함을 남겼다고. 우리는 매일같이 트라이시클을 타고 이 황무지를 건너 다이빙을 했다. 먼지 폴폴 날리는 간척지를 달리면서 생각했다. 아, 사막 가고 싶다. 바다, 사막, 산을 차례로 다 들러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사람에 지쳐서 그런지 그저 대자연이 보고 싶어졌다. 총 5일의 일정동안 와이파이가 연결되는 숙소에 돌아오면 실직 소식을 갑작스레 접한 동료들의 연락이 하나 둘 와있었다. 미안하고 또 고마운 마음들. 일단 씩씩하게 답장하고 또 조금 울었다. 동료들은 하나같이 나답게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로 마무리했다. 그래, 이 정도면 다시 구직할 때 낼 용기로 충분한 것 같아. 걱정 말고 하반기까지는 푹 쉬자.
자. 일단 이건 휴가였으니 집에 돌아가 행정처리 좀 하고 본가에도 갔다 오고 사람들도 만나고 계획 좀 세운 다음에 대퇴사 여행을 이어가야겠다...아차. 깜빡했는데 귀국한 주말에 미리 잡아둔 제주 일정이 있다. 거참 퇴사를 염두에 안 두고 잡은 일정이었는데 뭐 이리 빡빡히 잡아뒀대. 천생 노는 게 적성인가 봐. 이런 사람을 회사에 묶어뒀으니 힘들 만도 했네. 어떻게든 가볍게 마음 먹는다고 해도 아직은 불쑥불쑥 억울함이 올라오는데, 카톡으로 본 사주 선생님이 5월이 지나면 다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거라 그랬다. 책도 읽고 사람도 만나고 여행도 찐하게 다녀오면 그 마음 다시 올라오겠지. 그 때를 기다리며 지금을 즐겨야겠다.그 동안 취미를 많이 쌓아놔서 그나마 다행이다.
쇼핑리스트
숙소에 누구라도 붙잡고 마카다미아 공장에 꼭 가달라고 할 것. 마늘에 볶아 버터리한 풍미가 배가되어 영원히 맥주를 먹을 수 있을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