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덕희> 볼까, 말까?
'보이스 피싱 사기에 주의하세요!' 일주일에 몇 번은 볼 수 있는 문구다. 그만큼 경각심을 가져야 할 정도로 이 범죄가 자주 일어나고, 피해자도 많을 거라는 걸 추측해 볼 수 있다. 동시에 예방 외에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범죄란 것도. 세상이 편리해진 만큼 개인 정보도 쉽게 빼돌릴 수 있게 되었고, 어쩌면 이놈은 현대 기술 사회가 안고 갈 수밖에 없는 기생충일 지도 모른다. <시민덕희>는 이 범죄에 당한 피해자가 주인공으로 어두운 범죄를 코믹하게 풀어내 극장에서 좋은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보이스 피싱 범죄의 가해자는 목소리로 사기를 치는 자다. 피해자가 분노를 토하고 잡으려고 하는 대상 역시 이 목소리다. 덕희(라미란) 역시 손대리를 연기한 재민(공명)을 원수라 생각하지만, 그 역시 조직 내에서 이용당하는 피해자라는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된다. 이후 사기 당한 피해자와 사기 친 피해자의 기이한 공조가 시작되고 이 조직의 우두머리 총책(이무생)에게 다가가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조직의 실체를 알아가는 과정은 꽤 흥미롭다. 동시에 전체 그림이 완성될수록 악인들의 독한 면모에 갑갑해 지기도 한다. 이럴 때면 라미란, 염혜란, 장윤주가 합을 이룬 코미디가 극 활력을 불어넣고 웃음을 준다.
<시민덕희>에서는 덕희의 영웅적인 추진력이 돋보일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이 범죄의 치밀함이 돋보인다. 한국 밖에서 활동하는 조직을 조사하는 과정과 처벌하기 위한 절차가 너무도 복잡하고 까다롭다. 게다가 <시민 덕희>에서 공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은 우리의 기대를 철저히 배반한다. 덕희 편에 서야할 박형사(박병은)는 오히려 덕희가 총책에게 다가가는 데 훼방을 놓는다. 사기당한 이를 나무라고, 사건 해결에 부정적이라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지도 않는다. 그러다 덕희가 모든 실상을 밝힌 후에야 사건에 뛰어들어 공을 가로챈다. 영화 속 경찰은 항상 한발이 늦고, 결정적인 순간도 온전히 덕희 혼자 감당해야 한다.
영화 속 경찰은 분명 극화된 면이 있겠지만,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민덕희>는 2016년 실제로 보이스 피싱을 당했던 시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덕희의 모티브가 된 김성자 씨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경찰의 태도는 영화 그 이상이었다고 한다. 영화처럼 적극적으로 수사를 하지 않았고, 김성자 씨의 도움으로 보이스 피싱 조직을 검거했음에도 공을 그들의 몫으로 돌렸으며, 포상금 1웍 원도 지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독 부정적이고 무능력하게 표현된 박형사는 감독의 의도이자, 스크린 밖 공권력을 향한 분노의 표현이었던 거다. 그래서 <시민덕희>는 경찰에게 승리하는 소시민의 이야기로도 볼 수 있고, 거기에서 쾌감도 느낄 수 있다.
근래 가장 사랑받은 범죄극 <범죄도시> 속엔 우리가 기대하는 공권력이 있다. 형사 마석도(마동석)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악착같이 따라가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한다. 그의 활약은 박형사의 활약과 비교해 감정적으로도 후련함을 준다. <범죄도시> 시리즈엔 마석도가 악인을 응징하고 시원하게 주먹을 날리는 장면이 꼭 등장한다. <시민덕희> 속 박형사도 총책을 향해 하찮은 주먹을 날린다. 그러나 덕희의 한을 풀어주기엔 턱없이 부족했고, 대신 더 부각되는 건 덕희의 피로 범벅된 얼굴이었다. 그래서 <시민덕희>는 즐거운 관람 뒤 씁쓸한 감정을 남긴다. 우리는 어떤 경찰을 원했고 목격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