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볼까, 말까?
연초면 유명한 점집에 발 디딜 틈이 없다. 한 해의 운을 알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아 예약조차 힘든 경우도 있다고 한다. AI, 4차 산업혁명을 말하는 시대라는 걸 생각하면 재미있는 광경이다. 과학 기술의 시대에 답을 구하기 위해 찾는 존재가 전지전능한 챗 GPT가 아니라, 과학의 반대편에 있는 것만 같은 무당이라는 게. 무당의 말이 예언처럼 맞아떨어지는 일들이 있고, 그런 사례를 접하면 외면하기 힘들다. 믿을 수는 없지만, 믿지 않겠다고 섣불리 말할 수 없고 외면할 수 없는 것. 그게 '오컬트'라는 장르를 감싸고 있는 힘이다.
<파묘>는 묫자리와 얽힌 기이한 일들이 펼쳐지는 이야기다. 의학적으로는 문제가 없으나 울음을 멈추지 않는 아이에 관한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김고은)은 이 집안 조상의 묘가 문제라고 판단한다. 이에 무덤을 이장하기 위해 모인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 묫자리가 불길해 의뢰를 거절하려 했던 상덕은 화림의 설득으로 묘를 파게 되고, 그 묘에서 기이한 모양의 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때부터 끔찍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난다. 묘를 파헤친 이들은 살기 위해 이 묘에 얽힌 비밀을 알아내야만 한다.
오컬트는 '신비주의, 초자연적인' 등을 의미하는 용어다. 귀신이 등장하는 대다수의 영화를 오컬트 장르라고 부를 수 있지만, 조금 더 한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왔었다. 오컬트임을 강조한 영화에서는 사탄, 악마 등이 등장하고 이를 해석하고 맞서 싸우는 주인공이 등장했었다. 특히, 이 장르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실화 같은 느낌을 주기에 더 공포스럽다. <엑소시스트>, <오멘>부터 비교적 최근작인 <파라노말 엑티비티> 등의 영화가 언급된다. 국내에서는 낯설었던 장르였는데, 이를 대중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게 540만 명을 동원한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2015)이다.
<검은 사제들>이 서구식 오컬트의 문법과 이미지를 이식했다면, <사바하>(2019)는 신흥 종교에 얽힌 이야기를 조금 더 한국적으로 풀어낸 영화였다. 그리고 <파묘>에서는 장재현 감독이 이 장르를 더 자유로이 활용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장 감독은 우리에게 익숙한 동양철학과 역사를 얽어 이야기의 핍진성을 구축했고, 우리나라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작품으로 빚었다. 동양의 '풍수지리, 음양오행설'이라는 기반 위에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쌓은 독특한 이야기가 탄생한 거다. 더불어 우리 역사를 돌아보고, 마지막엔 역사적 한을 풀어내려는 시도까지 나아간다. 하나의 장르를 탐구하고, 발전시켰던 장재현 감독의 역할과 성취가 빛났던 작품이다. 그렇기에 <파묘>를 오컬트라는 단어로 한정하기보단 '장재현식 영화'라는 표현으로 기록해 두고 싶다.
<파묘>는 무덤을 파헤치듯 숨겨진 비밀에 다가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기이한 존재와 현상이 음양오행과 역사로 해석되는 부분이 신선하고, 여기서 오는 긴장감도 높다. 이 비밀의 실체가 드러나는 중반부까지의 몰입도와 재미를 보장할 수 있다.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등 개성 강한 캐릭터를 맡은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났고, 누구 하나 튀지 않게 힘을 잘 조절한 덕분에 <파묘>의 진짜 주인공인 미지의 존재가 더 인상적으로 보일 수 있었다. 다만,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부터는 긴장감이 급격히 떨어져 이야기가 늘어진다. 영화의 긴장감을 끌고 가기 위해 비밀을 다른 방식으로 더 늦게 보여주거나,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만들어 줄 반전 등의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 플롯의 구성이 평이해 무난하고 안정적으로만 전개가 된 점은 아쉽다.
영화가 강렬하고 전체적인 인상이 좋았기에 이런 아쉬움은 다음 영화를 기다릴 동력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새로운 영역까지 항해하는 데 성공한 <파묘>의 결점을 보완해 찾아올 장재현 감독의 다음 장을 얼른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