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영화' 볼까, 말까?
각 팀의 스프링 캠프가 시작되고, 개막도 얼마 남지 않은 행복한 시기다. 가끔은 모두가 행복한 이 시기가 낭만적인 것 같지만, 많은 야구팬이 야구를 향한 갈증을 느끼기에 하루빨리 '플레이 볼!'을 외칠 날을 오길 바란다. 이번 시간에는 이 갈증을 해소하고 얼마 남지 않은 비시즌을 야구롭게 견디게 할 세 편의 한국 야구 영화를 준비했다. 많은 야구 영화 중 이번 겨울 극장가의 흥행을 주도한 <서울의 봄>의 시간 이후에 뿌리를 내렸던 초창기 한국 야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작품을 선정했다.
첫 번째 영화는 국보 '선동렬'을 쟁탈전을 담은 <스카우트>다. 영화의 배경은 1980년, 프로야구 출범 전으로 최고의 대학 라이벌인 고려대와 연세대에서 선동렬을 데려오기 위해 스카우트를 파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모두까기 인형’으로 활약 중인 이순철 해설위원, 바람의 아들 이종범 코치 등의 이름이 등장해 해태 타이거즈 레전드 선수들을 떠올릴 수 있는 순간이 있는 영화다. 아쉬울 수 있지만, <스카우트>는 야구가 서사의 중심에 있는 영화는 아니다. 야구와 야구 선수를 환기할 수 있을 정도의 소재와 배경 정도로 활용된다. <스카우트>를 연출한 김현석 감독은 전작 <YMCA 야구단>에서도 야구를 경유해 역사를 보여준 적이 있는데, 이 작품도 그와 유사한 방법으로 야구가 등장한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했던 '서울의 봄'은 절대권력의 붕괴 이후 대한민국이 민주화의 꿈을 꿀 수 있었던 시기다. 민주화 운동이 있었던 1979년 10월 26일부터 1980년 5월 17일 사이였고, 이 꿈을 완전히 짓밟았던 게 1980년 5월 18일에 일어난다. 국가를 지키는 군대가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눴던 비극적인 날. <스카우트>는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을 소환해 봄이 꺾이는 순간을 조명한 작품이다. 동시간대를 다룬 작품으로는 <화려한 휴가>, <택시 운전사> 등이 있고, 이 영화를 함께 보면 근현대사의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순간을 다양한 시점에서 만날 수 있다.
다음으로 소개할 영화는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 원년팀 '삼미 슈퍼스타즈'에 관한 이야기, <슈퍼스타 감사용>이다. 씁쓸하게도 프로야구는 전두환 정권 정책의 일환으로 국민의 관심을 스포츠로 돌리고 지역주의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전략으로 출범했다. 당시 원년 팀은 OB·MBC·해태·롯데·삼성·삼미였고, 영화의 중심에 있는 삼미 슈퍼스타즈는 인천을 연고로 하는 팀이었다. 당시 삼미는 올스타급 선수가 적어 시즌 전망이 좋지 않았고, 원년엔 패배에 더 익숙한 팀이었다. 영화에서는 이 팀에서 뛰었던 투수 감사용의 도전기를 볼 수 있다.
성적으로만 보면 감사용은 성공했다고 말하기 힘든 선수였다.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용어인 '패전 처리용'으로 불렸던 투수다. 그러던 그가 당대 최고의 투수였던, OB 베어스의 레전드 박철순과 선발 매치업을 갖게 된다. 박철순은 20연승에 도전 중이었고, 감사용은 1승조차 없던 선수다. 박철순의 손쉬운 승리가 예상되었던 것과 달리 삼미는 감사용의 역투로 팽팽한 경기를 펼친다. 박철순의 최다 연승을 저지하고 감사용은 생애 첫 승을 기록할 수 있을까.
지금은 다소 생소한 실업 야구팀 및 프로 원년 팀을 볼 수 있고, 올드 야구팬이 추억에 잠길 수 있는 인호봉, 금광옥, 양승관, 김무관, 김우열, 김경문 등의 선수들이 등장한다. 또한, <스카우트>에 이어 폭력적인 공권력도 중간중간 등장해 시대의 분위기도 잘 담아냈다. 이범수는 이 영화를 계기로 주연 배우로 발돋움했고, 오른손잡이인 그는 연기를 위해 감사용을 만나 왼손으로 던지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올드팬의 추억을 자극하고, 마지막엔 진한 감동을 전한다. 야구팬뿐만 아니라 오늘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고 있는 모든 이에게 추천하고픈 영화다.
마지막 영화는 1987년을 무대로 역사적인 라이벌이 펼친 경기를 담은 <퍼펙트 게임>이다. 스포츠엔 늘 위대한 라이벌이 있다. 이들은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 서로를 성장시키는 촉매가 되기도 한다. 1980년대 프로야구 초창기 최고의 라이벌은 최동원과 선동렬이었고, 이들은 지금도 역대 최고의 투수를 말할 때 꾸준히 언급되는 대투수들이다. 최동원과 선동열은 통산 다섯 번 만났고, 선발로 승부를 펼친 건 총 세 번이라고 한다. 영화는 선발로 맞붙었던 1승 1패 후, 마지막이 된 대결을 영화로 담았다.
영화 속 최동원은 성실하지만 혼자서 짐을 지려고 하는 성격을 가졌다. 반대로 선동열은 게으른 천재형 투수로 묘사된다. <퍼펙트 게임>에서 두 투수는 15회 완투라는 현대 야구에서는 볼 수 없는 명승부를 펼치며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회를 거듭할수록 부족했던 걸 보완하고, 더 완벽한 투수가 되어 간다. 동시에 영화는 당시의 '지역주의'라는 그림자를 프로야구 전통의 라이벌인 롯데와 해태라는 팀을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최동원과 선동렬은 이 지역주의를 통합할 수 있는 완벽한 내용의 경기를 펼친다. 여담으로 당시에 두 투수의 경기를 직접 본 팬들은 영화보다 현실이 더 드라마틱했다고 한다. 지금은 당시의 경기 전체를 볼 수는 없지만, <퍼펙트 게임>을 통해 그 역사적인 경기를 만나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