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기완' 볼까, 말까?
'저 친구는 왜 저러는 거야?' 영화를 보다 종종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이 관객이 이야기로부터 멀어지는 순간이다. 생각해 보면 관객은 주인공의 선택에 꽤 관대한 편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특별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평범한 이야기라면 굳이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 비범한 상황 안에서 주인공이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 윤리를 벗어나는 선택을 내려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이입하고는 한다. 만약, 이런 관대함으로도 품을 수 없는 영화라면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이미지를 본다는 것 이상의 가치를 느끼기도 어려울 거다.
<로기완>은 탈북자 로기완(송중기)이 벨기에로 도망쳐 난민 신청을 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탈북 후 중국 공안에게 도망치다 어머니를 잃고 벨기에까지 오게 된 로기완. 예상보다 길어진 심사 일정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던 기완은 길거리를 떠돌며 하루하루를 어렵게 버텨낸다. 그러던 중 자신의 지갑을 훔친 마리(최성은)와 경찰서에서 만나고, 그녀가 가져 간 돈을 받기 위해 불편한 동행을 하게 된다.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를 영화로 만든 <로기완>을 향한 관심이 뜨겁다. 공개 후 넷플릭스 글로벌 영화 순위 상위권에 이름을 올랐고, 키노라이츠가 발표하는 콘텐츠 통합 랭킹에서는 3월 2주 차 1위를 차지했다. 이런 화제성과 함께 혹평도 이어지고 있다.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고, 이 중심에 있는 기완과 마리의 로맨스에 이입하기 힘들었다는 의견이 많다. 어떤 상황 속에서라도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문제가 되기 어렵다. 감정이란 변화무쌍하고 늘 이성적으로만 움직이지는 않으니까. <로기완>을 향한 혹평의 원인은 로맨스여서가 아니라 그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지 못했던 데서 찾아야 한다.
영화의 전반부는 벨기에로 입국한 기완이 하루하루를 악착같이 버티는 시간을 보여준다. 돌아갈 곳 없고, 온전히 벨기에 땅에도 있을 수 없는 청년은 살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과 걸칠 옷을 구하고, 화장실에서 추위를 피한다. 이방인의 하루는 처절했고, 보는 이의 손발이 시릴 정도로 카메라는 가까이서 기완을 담았다. 이를 통해 기완의 고통을 간접 체험할 수 있고, 그에게 연민의 감정을 가진 채 영화에 몰입할 수 있다. <로기완>에서 기완은 상황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키기 어려운 수동적인 존재다. 이 주인공을 자극하고 긴장감을 줄 요소가 필요한데, 기완이 겪는 악조건은 안타고니스트 역할을 하며 <로기완>의 초반부를 이끌어 간다.
후반부에도 기완은 난민 심사를 받으며 기다리는 수동적인 존재다. 다만, 일을 시작하고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초반부 기완을 괴롭히던 고난은 자취를 감춘다. 이를 대신해 새로운 중심 갈등을 담당하는 건 마리다. 마리와의 로맨스가 이야기의 중심에 오면서 그녀의 장애물도 기완이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된다. 그런데 이때 영화는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과정을 너무도 빠르게 전개한다. 어머니의 부재를 경험한 존재라는 공통점과 몇몇 교감하는 상황이 있음에도 기완과 마리의 감정선은 따라가기 벅찼다(상영 시간 탓에 두 사람이 연결고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생략되었던 걸까). 원작에 없던 마리와의 로맨스는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붙지 못했고, 이는 초반부 기완과 쌓아왔던 유대감도 희미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런 이유로 <로기완>의 중반부 이후부터는 기완의 이야기에 온전히 탑승하지 못한 채, 흘러가는 이미지를 바라보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인물들에게 몰입하지 못한 탓에 텍스트와 영상이 더 따로 움직이는 듯했고, 그럴수록 이야기의 작위성을 느껴 원작이 있다는 사실에 더 집착하게 됐다. 결국, <로기완> 속엔 관객이 마음 둘 자리가 끝내 보이지 않았다. 보는 이를 밀어낸 채 그들만의 사랑 이야기를 전개할수록 소외감만 더 강하게 맛봐야 했다. 타국에서 홀로 버텨야 했던 기완도 이런 쓸쓸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런 소외감을 공유하는 게 영화의 목표였다면, <로기완>은 독특한 방법으로 이를 달성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