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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Mar 20. 2024

자신의 미래는 못 봤던 '마담 웹'

'마담 웹' 볼까, 말까?

평일 저녁 홀로 영화관에 앉아 영화를 본다는 건 특별한 경험이다. 큰 공간을 혼자 빌린 것 같아 부자가 된 기분을 만끽하다가도, 없는 시간 쪼개서 선택한 영화가 모두에게 외면당한 작품이었다는 것에 자괴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나 한 사람 때문에 쉬지 못하는 사람이 생긴 것 같아 괜히 미안하고 불편해진다. <마담 웹> 덕분에 모처럼 이런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영화 산업을 먹여 살렸던 마블 히어로들의 부진이 심상치 않다. 언젠가부터 '마블'은 이름만으로도 이유가 충분해 보였지만, 영원한 건 없다고 했던가. 평일 저녁 영화관을 독차지 하는 호사를 누리고서 실감했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마블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걸.

<마담 웹>은 사고로 물에 빠져 죽다 살아난 구급 대원 캐시 웹(다코다 존슨)이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그녀는 우연히 세 소녀의 죽음을 감지하고, 그들을 구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악당과 맞서게 된다. 이 과정에서 캐시는 자신의 능력과 운명에 얽힌 과거를 알아간다. 이 작품은 마블 코믹스 원작으로 스파이더맨의 스핀오프로 유명하며, 마담 웹은 스파이더맨과 달리 과학이 아닌 초자연적인 영역에 기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초라하다, 아쉽다’라는 말로는 <마담 웹>의 현 상황을 다 표현하기 힘들다. 국내 개봉 첫날 관객 수는 3,586명이었고, 첫 주말 3일 동안 7,024명을 동원했다. 뒤에 0이 누락된 것만 같은 섬뜩한 성적표다. <마담 웹>은 북미에서의 성적도 역대 마블 히어로 영화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낮았고, 관객의 반응도 나빴기에 이런 실패는 예견된 일이었다고도 한다. 최근 개봉한 <더 마블스>(2023)를 비롯해 마블 원작의 히어로 영화가 전체적으로 관객 동원력이 예전보다 낮아지는 추세라는 걸 생각하면, 이들에게 쌓였던 관객의 불만과 피로감이 <마담 웹>에 이르러 제대로 폭발한 것 같다.

지난 10년 동안 너무도 많은 영웅이 각자의 능력을 뽐내며 경연을 펼쳐왔다. 웬만한 능력과 볼거리로는 관객이 눈길을 주기 힘든 시기다. 동시에 스튜디오들이 ‘유니버스’ 체제로 넘어간 뒤부터 한 편의 히어로 영화는 다음 영화를 위한 단계, 전체 세계관을 위한 도구처럼 제작되는 경향이 있었다. 서사의 결함과 부족한 재미를 다른 영화에서 보완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고, 한 편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거대한 세계관을 통해 재미의 최고치를 보여주고 해산한 뒤로는 MCU를 비롯해 유니버스를 구축했던 영화들의 재미가 예전 같지 않다. 개별 영화의 불완전함을 견뎌줄 관객도 이제는 많지 않아 보인다.


<마담 웹>도 뒷이야기를 위해 세계관을 세팅하는 영화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물론, 이번 흥행 성과를 봤을 때 속편의 제작이 가능할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마담 웹의 능력을 소개하고 함께할 조력자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긴장감 없이 나열되어 설명서 같았다. 특히, 눈이 즐겁지 않은 게 아쉬웠다. 마블 히어로 영화들이 캐릭터의 다채로운 액션에 방점이 찍혔던 장르였는데, 이와 비교해 마담 웹의 액션은 타격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부족하다. 능력의 특성상 미래를 보고 대처하는 수동적인 입장이라 시각적으로 흥미로운 볼거리를 만들기 힘들었다. 마담 웹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기존 마블 영화와는 다른 방법과 장르를 고민했어야 하지 않을까.

더 아쉬운 건 이야기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캐시가 중요한 결정으로 내리고 소녀들과 관계를 형성할 때 근거가 되는 건 예지 능력을 통해 본 미래의 이미지다. 그런데 이때 <마담 웹>은 현재의 타임라인을 따라가고 있는 관객을 배려하지 않는다. 관객이 캐시에게 이입하고, 갑자기 등장한 소녀들과 가까워질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은 채 예정된 미래로만 쉼 없이 달려간다. 잠깐 지나가는 대사와 에피소드로 이들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이해시키려 하지만, 필요한 설정을 형식상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데 그친다. 결국, <마담 웹>은 '예지'라는 스포일러를 통해 장면을 리플레이처럼 따라가기에 관객이 영화와 끈끈하게 이어지지 못했고, 특별한 감흥도 느끼기 어려웠다.


마담 웹이 미래를 먼저 보고 위험을 피한 것처럼, 국내 관객도 북미에서 처참한 실패를 먼저 봤기에 <마담 웹>을 피했던 건 아닐까. 미래 예지 능력은 그렇게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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