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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Mar 27. 2024

모스크바 - 역사를 품은 대도시의 무한 성장

러시아 사람들이 꿈꾸는 유서 깊은 도시

얼마 전 모스크바에서 유혈 테러가 발생했다.

20년만상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테러였다고 한다.

사망자들을 깊이 추모하는 무거운 마음으로, 모스크바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Скорбим...(애도합니다)



내가 러시아에 처음 간 시기는 바야흐로 2004년, 장소는 모스크바였다.

국어를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그 나라 수도에는 가봐야 하지 않겠가?


하지만 당시도 전후로 러시아에 대형 테러와 스킨헤드 등 사고가 잦았던 그곳에 가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긴 했다. 불안한 치안으로 위험한 나라로 인식된 20년 전의 러시아는 전공자들도 굳이 가려고 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각오를 다지고 러시아행을 감행했는데, 정작 가서 보니 귀한 보물처럼 나만 알고 싶어지는 장소가 되었다. 답답하기도 했지만 매력적이었다.

그 첫 만남이 모스크바여서 더욱 그.


물론 모스크바가 제정러시아 수도였던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늘 비교를 당하긴 하나,

내 마음의 고향은 단연 첫 발걸음을 한 '모스크바(Москва)'이다.

옛날의 러시아, 지금의 러시아, 소련 등 역사 속 러시아가 모두 녹아든 현장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어디선가 듣거나 보았을 법한 모스크바의 모습, 하나씩 알려주고자 한다.


옛날과 현대가 함께 조화로운 모스크바의 모습(출처: stranabolgariya.ru)


모스크바는 어떤 곳?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 러시아는 연방국가이다.

수도의 명칭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의 이름과 동일한데, 그 기원은 고대 슬라브어 '질퍽한, 축축한' 의미에서 온 것이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해당 지역이 원래 습지였어서 그런 의미 단어가 자연스레 이름으로 붙었다.


모스크바 위치(출처: 구글맵)


모스크바는 러시아 영토 중 유럽과 가까운 서부에 위치한다. 수도가 블라디보스토크와는 시차가 7시간이니, 과연 같은 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다. 그만큼 러시아 땅은 상상 그 이상으로 넓다. '유라시아'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나라이다. 


라가 너무 커서 극동시베리아 지역 거주민들 중에서 모스크바에 가본 적 없는 이들이 대다수이며, 그곳을 전혀 다른 나라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들에게는 늘 수도 모스크바 일생에 한 번이라도 가서 일해보고 싶은 꿈의 도시다.


모스크바(붉은색)와 신모스크바(주황색+황색) (출처: mos.ru)


모스크바는 인구 1,800만 명의 대도시이다.

사람이 모이고 도시가 발전하면서 모스크바 생활권(수도권)차츰 넓어다. 2012년에는 신모스크바(Новая Москва) 프로젝트를 통해 면적을 남서부 지역 1,480㎢(서울 면적의 2배)까지 확대해 모스크바로 병합한 바 있다. 도시 면적은 기존 대비 2.4배나 확장됐고, 수도는 유럽에서 거의 최고 수준의 규모가 되었다. 모스크바 지하철은 14개 노선이 개통돼 모스크바 중앙선(МЦД)까지 포함하면 노선 수만 거의 20개에 달한다. 유동 인구도 많으니 가히 엄청난 도시다.


나도 직접 가보기 전까지 막연히 그저 서울 같은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시 스케일은 어마어마했고, 역사 깊은 건물과 현대적인 발전 속에서 풍기는 국가의 저력이 보통의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러시아의 급속한 발전은 모두 모스크바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곳의 역사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리라.


러시아의 중심이 되기까지


모스크바의 역사는 12세기 시작된다. 당시 로스토프-수즈달 공국의 공후였던 유리 돌고루키(Юрий Долгорукий, 1090년대~1157)가 1147년 현재 수도의 자리에 모스크바를 설립했다. 엄밀히 '돌고루키'는 러시아어로 '팔이 긴'이라는 의미로, 그의 활발한 공국 정복 활동으로 인해 붙여진 별칭이다. 현재 트베르스카야 거리 광장에는 그의 활약을 기리며 세운 동상이 1954년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말을 탄 갑옷 입은 유리 돌고루키의 동상은 용맹한 모습으로 모스크바의 정체성에 힘을 실어주는 듯하다.


< 유리 돌고루키 동상 >
- 주소 : Тверская пл.(트베르스카야 광장) 트베르스카야 거리에 위치
- 찾아가기 : 메트로 2호선 Тверская(트베르스카야)역에서 도보 5분, 모스크바 시청 건너편
트베르스카야 거리에 있는 유리 돌고루키 동상(출처: dzen.ru)


그렇게 모스크바는 12세기 해자와 성벽으로 둘러싸인 공국의 작은 목조 요새로 시작해 영토를 확장해 나갔다. 연합을 이루던 공국들은 차츰 통합되어 영역이 넓어졌다. 이후 1237~1238년 몽골타타르의 침략으로 모스크바는 약탈을 당하고 심하게 불타버렸다. 이처럼 목조 요새가 쉽게 불타자, 14세기에는 성벽 강화 위해 성벽을 석조로 지어 올렸다.


12세기 모스크바 풍경 그림(출처: bangkokbook.ru)


러시아상징하는 '크렘린(Кремль)'이라는 단어는 14세기부터 사용되었다. '크렘린'은 러시아어로 '성벽'이라는 뜻으로, 공국 시절에는 주요 도시마다 방어를 위한 크렘린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모스크바 크렘린이 원형으로서 대표성을 가진다. 그래서 지금도 러시아 정부를 대신하는 고유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크렘린은 냉전 시대 비밀이 많아 보이는 소련을 빗댄 말로도 사용돼, 속을 알 수 없는 이들을 보면 '크렘린 같은 사람'이라고도 했다.


아무튼 이러한 석조 성벽이 처음에는 흰색이었다. 이후 이반 3세가 이탈리아 건축가들을 초빙해 15세기 말 벽돌로 붉은 성벽과 탑을 증축하여 외관이 조금 변했다. 모스크바는 이 크렘린을 중심으로 도로와 교통이 발달했고, 교역 활발하게 이루다. 모스크바 대공국의 수도 모스크바는 러시아가 제국이 되고서도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이어갔다.


< 모스크바 크렘린 >
- 주소 : Московский Кремль
- 찾아가기 : 메트로 4호선 Александровский сад(알렉산드롭스키 사드),  1호선 Библиотека им. Ленина(비블리아체카 이메니 레니나)역에서 도보 7분


이반 3세 당시 모스크바 크렘린 풍경 그림(출처: stroiteh-msk.ru)


크렘린 성벽 너머 붉은 광장(Красная Площадь) 빼놓을 수 없다. 광장은 15세기부터 수백년 간 무역을 위한 시장 공간었다. 이후 이곳에서 황제의 칙령을 발표하거나 죄인 공개 처형이 이루어지기도 했으나,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국가 행사 및 국력을 과시하는 장소가 되고 있다. 현재는 테트리스의 배경 성 바실리 성당과 아름다운 백화점(ГУМ), 레닌의 묘가 있는 붉은 성벽, 역사 박물관이 광장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 붉은 광장 >
- 주소 : Красная пл.(크라스나야 플로샤지)
- 찾아가기 : 메트로 1호선 Охотный ряд(아호트니 랴드), 2호선 Театральная(치아트랄나야), 3호선 Площадь революции(플로쉬치 레발류치)역에서 도보 3~5분


붉은 광장(출처: dzen.ru)


1712년 표트르 대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수도를 이전했으나 모스크바는 여전히 문화, 역사적 중심로서 자리를 지켜냈다. 200년 넘게 수도의 자리를 상실했어도,  모스크바는 러시아 혁명 이후 1918년 다시 소련의 수도가 되었고 지금 러시아 연방 수도의 자리를 이어오고 있다.


소련 시절에는 른 도시들처럼 모스크바도 도시 내 수많은 교회와 성당이 파괴되기도 하였으나, 도심에 지하철, 트롤리버스가 개통되고 산업화, 과학기술의 발달 등 새로운 발전과 변화가 일어났다. 1980년에는 모스크바에서 올림픽도 개최할 정도로 소련의 위상은 대단해 보였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0년대 모스크바(출처: dzen.ru, bangkokbook.ru)


그러나 1991년 소련이 무너진 이후 겪은 체제 전환은 모스크바를 비롯한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다. 그리고 1999년 연말 빅 이벤트와 함께 밀레니 큰 전환점을 맞는다. 푸틴이 러시아 연방 대통령 당선된 것이다.


푸틴이 집권한 이후 러시아는 모스크바 중심으로 무섭 성장했. 가격이 치솟는 오일 머니 덕분에 나라 살림 나아졌고 도시의 전반적인 여건도 개선되었다. 특히 IT 산업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터넷 환경이 좋아져 여러모로 생활의 편의를 가져다 줬다. 단적인 예로 러시아 기업 얀덱스(Яндекс)에서 일찍이, 한국보다 먼저 콜택시 어플을 개시한 걸 보면 장족의 발전이다. 휴대폰 개통만 하면 현지에서 지내기는 너무나편하다.


이러한 첨단 기술의 발전은 모스크바 근교에 소위 '러시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스콜코보(Сколково) 같은 특화 도시를 조성하 다. 그 놀라운 발전이 이어져 2018년에는 러시아 월드컵까지 개최하지 않았던가.


얀덱스 택시와 스콜코보 혁신센터(출처: priprikol.ru, photocentra.ru)


2018 러시아 월드컵 상징 자비바카(출처: sports24.ru)


1996년부터 순차적으로 건설 중인 20여 개의 고층 건물이 단지를 이루는 모스크바 시티(Москва Сити)는 그야말로 미래의 도시를 보는 듯하다. 현재도 건물이 지어지고 있는 모스크바 시티는 비즈니스 및 거주, 여가의 기능이 결합된 복합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클래식한 건물들 사이 오랜 시간 공들여 올린 현대적인 도시, 오랜 겨울잠을 깨고 일어난 곰처럼 모스크바의 잠재력을 드러내는 상징이 아닐까.


모스크바의 성장은 무한하다!


오랜 건물들 속 모스크바 시티(출처: mixyfotos.ru)




이처럼 역사와 더불 많은 부침을 겪은 모스크바.

그 깊이는 모습에서도 확인할 있지만 건물 하나, 장소 하나에서도 지나온 시간들과 이야기가 묻어난다.

전쟁 이후 각종 제재로 모스크바도 서방과 서방을 옹호하는 국가들에게 길을 닫았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오히려 외부의 방해가 없어 평온하고 흔들림 없이 건재했다. 지금도 그 자리에서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 모스크바 사람들(모스크비치 москвичи)이야말로 진정한 도시 역사의 산증인이 아닐지.



물론 최근 발생한 테러로 마음이 안타깝다.

아마도 이제부터는 당분간 철저한 보안과 경계로 인해 도시에는 삭막함이 깃들게 될 것 같다.

이전보다 불안하고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지지 않을까. 그래도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살아내리라 믿는다.


바쁘게 살아가는 모스크비치(출처 m.7ooo.ru)



= 모스크바 관련 예전글 =


* 커버 사진 출처 : d-russi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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