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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Apr 03. 2024

상트페테르부르크 - 인공 도시 위 아름다운 박물관

표트르 대제가 터를 닦고 여제들이 장식한 도시

유럽이네!


시를 접하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일 것이다.


유럽은 유구한 유산들을 현재까지 보존하며 옛 시절을 자랑스 여기는 지역이 아니던가?

이곳도 마찬가지이다. 유럽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는 건 아니지만, 화려한 제국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러시아 제국의 역사는 결코 상트페테르부르크(Санкт-Петербург)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나에게도 이 도시는 지금까지 다녀본 여행지 중 가장 설레는 마음을 선사한 곳이다.

유럽 느낌이 짙지만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며, 운하가 있어 여행낭만과 감흥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에서고속열차로 4시간, 일반 밤기차로 다음날 아침 도착하는 러시아 제2의 도시.

열차 출발지가 모스크바라면 레닌그라드(옛 상트페테르부르크 명칭) 기차역에 가서 열차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게 되는데, 종착역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모스크바 기차역이다. 기차역 이름이 바로 도착지명인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모스크바 기차역(출처: foto-onlain.ru)


처음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갔을 땐 모스크바와는 달리 아기자기하고 클래식한 모습에 매력을 느꼈고,

이후 여행과 업무로 몇 번 방문했을 땐 관광도시로 자리잡 서유럽만큼이나 소매치기가 기승 부려  사리느라 도시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아름다운 도시인데, 그 이면에는 아픔과 감추고 싶은 이야기도 존재한다.


아름다운 상트페테르부르크(출처: ticketstour.ru)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도시, 대문호 푸시킨 생애 마지막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장기 집권 중인 푸틴 대통령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우리가 알 만한 유명인들을 많이 배출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어떻게 탄생한 도시일까?


북방의 베네치아(출처: mykaleidoscope.ru)


북방의 베네치아의 탄생


‘서구로 난 창’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제정 러시아의 수도이자, 제2의 도시이다.

오밀조밀 예쁘게 조성된 유럽식 건물과 궁전, 교회와 성당 등 도시 풍경이 아름다워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소로도 손꼽히고 있다. 지금의 도시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제국 시절의 영광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구석구석 흐르는 운하와 그곳을 오가작은 배를 보면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떠오른다. '북방의 베네치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30개가 넘는 섬과 20여 개의 운하가 350개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도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위치(출처: 구글맵)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수도인 모스크바에서 북서쪽으로  700km 떨어져 있다. 위치상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사이 핀란드만에 접해 있어 바다로 진출하기 좋은 조건을 가졌다.


어떻게 이곳에 자리잡게 되었을까?


도시 탄생의 기원은 발트해 지배권을 두고 러시아와 스웨덴이 벌인 북방전쟁(1700~1721)에서 시작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되기 전 도시 자리는 원래 늪지대였다. 표트르 대제 통치 시절 러시아가 스웨덴을 몰아낸 그곳, 즉 지금의 토끼섬에 황제 최측근 알렉산드르 멘시코프(Александр Меншков, 1672~1729)가 1703년 도시 기초를 마련했다. 기초가 된 곳은 현재의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Петропавловская крепость)이다. 요새 부근 네바강 삼각주는 1년 중 다섯 달은 얼어있었고, 늪지대라 매년 홍수가 나는 질퍽한 곳이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서구와 교역할 수 있는 통로가 되는 위치이기도 하여, 표트르 대제도 그곳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출처: spbmuzei.ru)
<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
- 주소 : 3, территория Петропавловская крепость
- 찾아가기 : 메트로 2호선 Горьковская(고리콥스카야)역에서 도보 11분


늪지대인 탓에 도시의 건설 과정은 매우 험난했다.

황제는 도시 설립을 위해 매년 1~3만 명의 농노와 전쟁 포로, 범죄자를 데려다가 늪을 메꾸도록 했고, 그곳에 말뚝을 박고 기초를 세워 나갔다. 도시 기반을 다지려면 무엇보다 돌이 많이 필요했으므로, 당시에는 석재를 세금으로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자연 환경이 열악한 탓에 수많은 노역자가 질병으로 사망했고, 네바강 홍수로 거주지가 쓸려 내려가기도 하는 등 수난의 연속이었다. 따라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불모지를 개척한 많은 이들의 희생이 가져다 준 인공의 도시라 일컬을 수 있겠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설립자 표트르 대제와 청동기마상(출처: author.today, author.today)


표트르 대제는  1712~1714년 모스크바에서 이 개척지로 수도를 옮겼다. 명칭도 도시를 건설한 표트르(Пётр) 대제의 이름에 성인(Saint)을 붙여 '상트페테르부르크'라 했다. 현지인은 줄여서 ‘피테르(Питер)’라 칭하기도 한다. '피테르'는 표트르의 네덜란드식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왜 네덜린드식인지는 황제가 몸소 서구 문물을 배우고 조선 기술을 습득하려 네덜란드 등 유럽에 간 것과 무관하지 않. 도시 이름은 1914년 독일과 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독일어보다 슬라브어에 가까운 ‘페트로그라드’로 바뀌는 한편, 레닌 사후에는 레닌의  ‘레닌그라드’가 되었다. 그리고 소련 붕괴 지금의 이름을 되찾았다.


< 표트르 대제의 청동 기마상 >
- 주소 : Сенатская пл.(네바 강변 세나트 광장)
- 찾아가기 : 메트로 5호선 Адмиралтейская(아드미랄체이스카야)역에서 도보 12분


여제들과 유럽 건축가들이 꾸민 도시


표트르 대제가 도시의 기반을 닦아 서구로의 문을 열었다면,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의 현재 분위기를 만들고 꾸민 이들은 표트르 이후의 여제들이다. 그중에서도 안나 여제, 엘리자베타 여제, 예카테리나 2세 등 3인이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당시 러시아에 있는 유럽 건축가들과 도시를 아름답게 조성해 나가는데 여념이 없었다.


왼쪽부터 안나 여제 - 엘리자베타 여제 - 예카테리나 2세(출처 worldofhistory.ru, multiurok.ru, dzen.ru)


표트르 대제 시절부터 도시는 이미 서구로부터 많은 것들을 받아들여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표트르 사후 다소 지지부진했던 도시 건설은, 안나 여제(Анна Иоанновна, 1693~1740) 통치 당시 건축위원회가 조성되면서 탄력을 받았다. 도시의 건축물은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지기 시작했고, 오늘날 같은 도시의 분위기와 외관을 갖추게 된 시기는 바로 안나 여제 때부터라 할 수 있다. 안나 여제와 그 이후 엘리자베타 여제(Елизавета Петровна, 1709~1762)의 총애를 받은 건축가는 이탈리아 출신 프란체스코 라스트렐리(Франческо Растрелли,1700~1771)였다.


프란체스코 라스트렐리와 그가 설계한 겨울 궁전(現 에르미타시) (출처: artchive.ru, mykaleidoscope.ru)


라스트렐리는 자기만의 감각을 살려 화려한 러시아식 바로크 양식으로 멋진 궁전과 성당을 건설했다.

엘리자베타 여제 집권 시절, 그의 아버지 표트르가 기틀을 잡은 페테르고프 여름 궁전과 호박방으로 유명한 차르스코에 셀로의 예카테리나 궁전이 모두 라스트렐리에 의해 눈부시게 완성되었다. 이후 겨울 궁전도 바로크 양식으로 다시 지어졌는데, 그 결과물은 지금도 세계가 감탄하는 에르미타시 박물관의 본관 건물이다. 안타깝게도 엘리자베타 여제는 겨울 궁전 완공되기 세달 반 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외에 도시의 아름다운 스몰니 성당도 라스트렐리작품이다.


이처럼 라스트렐리는 현지 건축사에 큰 획을 그을 만한 독자적인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로 도시 모습을 잡아갔다.


페테르고프 여름 궁전과 차르스코에 셀로 예카테리나 궁전(출처: sportishka.com,  ink-project.ru)
스몰니 성당(출처: mykaleidoscope.ru)
< 겨울 궁전(에르미타시 박물관) >
- 주소 : Дворцовая пл., 2 (궁전 광장)
- 찾아가기 : 메트로 5호선 Адмиралтейская(아드미랄체이스카야)역에서 도보 10분

< 스몰니 성당 >
- 주소 : пл. Растрелли, 1(라스트렐리 광장)
- 찾아가기 : 메트로 1호선 Чернышевская(체르니솁스카야)역에서 15번, 12번 트롤리버스로 Тульская улица(툴스카야 울리차) 정거장에서 도보 10분


예카테리나 2세(Екатерина II, 1729~1796) 시절에는 건축물 스타일이 좀 달라졌다.

서구에 포커스를 두고 제국적인 비전을 반영한 신고전주의 양식을 추구한 것이다. 프로이센 공후의 딸인 예카테리나는 러시아로 시집 와서 남편 표트르 3세를 밀어내고 황제 자리에 올랐는데,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열성적으로 통치하며 표트르 대제 이후의 계몽 군주로 자처했다. 그래서 그녀의 통치 시절 지어진 건축물은 로마 제국의 스타일을 모방한 것들이 많았다.


당시 건축가 카를로 로시(Карл Росси, 1775~1849)는 그러한 제국적 콘셉트를 담아 건물을 지어 올렸다. 건물 상단에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인공과 도약하는 말 조형물이 있는 총참모부 건물과 알렉산드라 극장, 그리고 현재는 루스키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미하일롭스키 궁전 등이 바로 그의 작품이다.


카를로 로시와 그가 설계한 총참모부 건물(출처: dzen.ru, vk.com)
알렉산드라 극장과 미하일롭스키 궁전(루스키 박물관) (출처: fotoxcom.ru, architectureguru.ru)
< 알렉산드라 극장 >
- 주소 : пл. Островского, 6(오스트롭스키 광장)
- 찾아가기 : 메트로 2호선 Невский проспект(넵스키 프라스펙트), 3호선 Гостиный двор(가스치니 드보르)역에서 도보 5분

< 미일롭스키 궁전(루스키 박물관) >
- 주소 : ул. Инженерная, 4(엔지니어 거리)
- 찾아가기 : 메트로 2호선 Невский проспект(넵스키 프라스펙트), 3호선 Гостиный двор(가스치니 드보르)역에서 도보 6분


라스트렐리의 건축물 여성적이며 화려했다면,

로시의 것들은 다소 남성적이고 비장함이 담겨있다.

건축물들을 유심히 살펴보며 스타일을 비교해 보는 것도 도시를 감상하는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이처럼 여제들의 추진력과 섬세한 안목 덕분에 하나의 거대 건축 박물관과도 같은

현재의 아름다운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습을 간직게 된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 지구 및 관련 기념물들은 199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지역을 보존하기 위해 주변 건축물높이에도 제한을 두고 있다. 한편, 그 지역을 벗어나면 고도 462m의 라흐타 센터 같은 마천루도 만날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고층 건물 라흐타 센터(출처: wikiway.com)




이처럼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아름다운 건축물로 화려한 제국 시절의 중심임을 짐작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19세기 러시아의 어두운 현실이 표현된 문학 작품의 배경이 되기도 했고,

20세기에는 노동 투쟁과 격렬한 러시아 혁명이 발발한 현장이자 전쟁 중에는 장기간 봉쇄로 온갖 시련을 겪 장소였다.


늪지대에서의 극적인 탄생,

그리고 지금 모습을 이루기까지 수만가지 다양한 스토리를 품고 있는 도시,

사람이 만든 인공 도시 위의 아름다운 박물관과도 같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과연 오랜 시간을 품은 '박물관'이라고 할 만하다.



= 상트페테르부르크 관련 예전글 =


* 커버 사진 출처 : rus163m5.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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