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로 복귀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3년 만에 돌아오니 나를 대하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예전 '씨'였던 호칭이 이제는 대외 명칭(실제는 대리)인 '과장'으로 바뀌었고,
불리는 무게 만큼 더 많은 책임까지 부여되니 하루하루 새로운 부담을 짊어지게 되었다.
스멀스멀 내 회사 생활의 가장 큰 고비는 그렇게 왔다.
그간 10여 개 분기 정산 업무에 지쳐있었고 쉼 없이 달려온지라, 이번에는 세밀하고 꼼꼼하게 살펴야 하는 업무에서 좀 벗어나고 싶었건만
더 강도 높은 고차원적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사람 심리가 참 간사한 게.. 주구장창 단순 반복 업무를 할 때는 '내가 이런 일 하자고 회사 다니나' 생각을 가지면서, 막상 회사에서 막중한 업무를 부여 받으면 '난 아직 이런 거 할 깜냥이 안 돼'라며 뒷걸음질친다.
나는 해외에서 시도때도 없이 수많은 전화를 받고,
하루에 수 십 개의 공문을 작성하며 엄청난 엑셀 파일로 사람과 예산을 관리해야 하는 업무를 맡았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양은 안 줄고 일한 건 티도 안나면서,
자칫 하나라도 깜빡했다간 엄청 눈에 띄고 욕 먹는 그런 일,
자리를 비우거나 휴가를 가는 것조차 힘든 일이었다.
더구나 전임자와의 업무 인수인계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제로 베이스에서 스스로 공부하고 물어가며 하나하나 시작했다. 관리 지원 업무라 다행히 일에 대한 보람도 느꼈고, 나에게 고마워하는 분들 덕분에 힘이 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중한 업무로 어깨가 무거운데, 팀원들도 모두 숨죽이고 일만 하니 도와달라고도 못했다.
매일 늦은 시각 녹초가 되어 걱정 덩어리를 짊어지고 귀가했다. 내일은 제발 큰 사건이 안 터지길 바라면서.
지금은 내가 그때 맡았던 업무를 별도의 팀에서 진행하고 있는 걸 보면, 역시 나 혼자 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중요한 업무였던 건 분명하다.
팀에서는 한 단계 높은 수준의 개선안을 지시했지만, 매일 닥친 일만 처리해도 하루가 다 가서 지쳐버리곤 했다. 책임감은 있는데, 몸과 마음은 못 따라가고,
그렇게 과장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본사에 시름을 나누고 풀 동기가 다 파견을 나가 한 명도 없었다는 점도 버티기 힘든 요인이었다.
주위에는 낯선 후배들, 모르는 상사들뿐이라 외롭기도 했다. 내 마음이 팍팍하니 먼저 손 내밀 여유도 없었다.
다행히 같은 팀, 같은 층에 있는 선배님들과 친해졌는데, 언니처럼 잘 챙겨주고 마침 동네도 가까워 야근 후 자주 함께 카풀로 귀가하며 이런저런 나눈 얘기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됐는지 모른다.
퇴사의 용기도 이들로부터 얻었다. 열 동기 부럽지 않다!
또 나를 힘들게 한 건 서른이 코앞이라는 사실이었다.
이직은 늘 잘 안 풀렸고, 어중간한 경력 때문에 들어갈 만한 회사도 없었다.
지금의 회사 말고 선택지는 없었다.
그러던 차에 학업에 눈을 돌리게 됐다.
휴학 없이 학교를 도망치듯 빨리 떠나온 게 늘 아쉬웠었다. 거기다 회사 생활을 하며 무지한 내가 싫었고, 전문성에 대한 질문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기에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은 매순간 있었다.
여기서 나는 다소 경솔한 판단을 내리게 된다.
나의 아픈 손가락, 러시아어 전공을 살리고 싶었고, 그래서 노어노문학 석사 과정을 밟아야 겠다고 결심했다.
오래 회사 생활을 한 내가 실용 학문이 아닌 순수 학문을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솔직히, 교수가 되겠다는 꿈보다는 공부를 하며 내실을 다지고 후일을 도모하겠다는 도피성 결론이었다.
전업 학생으로 해야 하는 학문이라 퇴사의 이유는 충분했다.
그만큼 나는 절실했고, 그렇게 순식간에 일을 벌이고 말았다.
교수님을 만나 입학 의지를 비치고, 대학원 원서를 제출해 합격 통보도 받아놨다.
회사에 내 퇴사 의사만 밝히면 됐다.
이미 한 차례 경험이 있었지만 입이 차마 안 떨어졌다.
윗분께 말씀드릴 가장 좋은 분위기와 가장 좋은 타이밍이 필요했다. 배가 아파올 정도로 너무나 떨렸다.
모든 게 다 끝나는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첫 퇴사라 그랬을까?
그만두겠습니다. 대학원 진학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난 결국 서른의 언덕에서 퇴사를 말했다.
윗분들은 나를 말리거나 휴직하고 가라 하시기도, 선배들은 내가 부럽다고, 응원하겠다고도 하셨다.
퇴사를 말하기까지의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행정 처리는 빨랐다.
그래서 더 허무했다.
6년 반 고생한 나는 스스로에게 포상 휴가를 주었다.
자유로운 새처럼 저 멀리 훨훨 날아가자며!
그래! 난 뭐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서른'이다!
Point8. 업무 요청은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주어진 업무만 하며 회사에서 몇 년 지내다 보면 어느새 중간 관리자가 돼있다. 그전까지는 나만 잘해도 됐지만, 이제는 직원들과 팀까지 함께 생각하고 추진해야 한다. 업무는 한 차원 높은 것이 부여돼 부담도 한층 더 커지고, 맡은 일의 범위와 분량도 방대해져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후배나 초급 직원, 인턴 등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업무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그들에게 명확하게 전달하는 일이다. 대충 '알아서 해오겠지' 던져줬다가는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결과물로 돌아와 결국 내가 일을 두 번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생각보다 그런 경우가 많다. 센스 있는 직원이라면 의도를 재차 물어 확인하고 진행하겠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애초에 구체적이고 명확한 가이드 라인을 주며 부탁해야 서로 고생을 줄일 수 있다. 중간 관리자는 먼저 업무를 제대로 잘 파악하자. 업무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이 요청도 심플하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일 잘 시키는 것도 능력이다. 필요하다면 일을 부탁하는 직원들에게 점심이나 저녁을 사주며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것도 원활하게 업무 피드백을 받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밥 한 끼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