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서 닷새를 밖에 못 나가며 고립된 채 보내던 지난봄, 이러다간 집 멀미가 나고 말 듯하여 집을 나섰다. 대녀 네가 파주 월롱에 카페를 내서 그림 두 점을 선물한 것이 3월 초였다. 선물한 그림을 진심으로 좋아해 주는 대녀 내외에게 고마워서 서너 점 더 선물하겠다는 말을 던졌더랬다.
그러면서 전시회를 한 번 하자고 의견을 모았는데 해야 할 일이 생기고 나니 미루던 수술을 해야겠다 싶어졌고 급하게 날을 잡아 받은 그 수술이 예상보다 무척 더디 나았다. 그렇게 한 달하고도 보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드디어 5월 초, 그림 넉 점을 더 들고 가 그림을 앉혔다. 작은 꽃병을 옆에 놓아도 잘 어울리고 카페 분위기와도 잘 어울렸다.
다들 신기해 하고 기뻐해 주지만 내 그림에 대해 친구와 후배들의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다. 그림에 대해 모르는 이들은 좋다, 나쁘다도 말할 수 없다며 신중하고, 어릴 때 좀 그려 봤네 하는 이들은 훈수를 두려고 하거나 ‘니가 그려 봤자지’ 하는 태도. 특히 붓을 좀 들어 봤던 이들은 나의 그림과 그리는 행위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눈치였다. '뭐하러 그 나이에 그리는 거냐' 이런 식으로 말이다.
고백하건대, 앞서 그림의 길을 걸어간 이들의 다정한 훈수에 힘입어 내 그림이 탄생했음을 인정한다. 잔소리를 하면서도 나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던 이들이니 말이다. 그중에서 남편과 오빠들 그리고 친구 몇의 조언은 기초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내게 꼭 필요한 요소를 짚어 주었다.
"그 나뭇잎 사이 바닥 흙을 좀 더 진하게 해 봐." 망칠까 봐 겁나서 도무지 진하게 못 하는 내게.
"꽃 그림은 꽃 그림대로 묶고 풍경 그림은 풍경 그림대로 묶어 봐." 전시회를 하기로 결정하고 만들어 본 포스터를 보여줄 때.
"미술 입시 준비하면 처음부터 큰 종이에 시작해." 작게만 그리다가 재작년 A1지에 그려 내라는 공모전을 미친 척하고서 준비하며 자신 없어할 때.
“진아, 문 안쪽을 더 어둡게 하고 바깥쪽을 환하게 해 봐!” 멋진 사진은 알아봐서 그리려고 달려들지만 어두움과 밝음을 확실하게 구분 못하는 내게.
“소실점을 맞춰 주고 집의 옆선들이 기울지 않게 해 줘!” 어떻게 하면 공모전에서 입상할 수 있냐고 묻는 내게.
중심을 맞춰야 하고 대비를 분명히 줘야 하며 소실점을 지켜야 한다는 등등 기초적인 부분을 짚어 주며 나를 끌어 준 이들이 있어 쉬지 않고 그릴 수 있었다. 가끔 정말 잘 그리는 줄 알고, 또 가끔은 더 이상 그림이 안 늘면 어쩌지 걱정이 되어도 말이다. 아버지가 보고 싶은 날에도 그리고 아이들과 싸운 날도 그렸다. 엄마를 멀리 전의라는 곳으로 옮겨 지내시게 하고 와서도 그리며 걱정되던 마음을 진정시켰다. 흔적도 없이 흘러가 버릴 하루하루가 그림에 담기고 그림일기가 되어 한 권 두 권 쌓여갔다.
<광주 양림동 고철갤러리> 32x44 종이에 수채 2021 Lydia
거의 모든 걸 혼자 해온 터라 그림도 혼자 배워 그린다. 혼자일 때 마음이 편하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떠오르는 추억을 가슴에 담는 되새김도 하게 되니까. 혼자 놀며 자랐고 혼자 애들 키우며, 혼자 시간을 많이 보냈다. 다른 이들과 어울리고 싶은 순간이 없지 않았으나 돌이켜보면 나는 잘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어서 쉬이 예민해지고 굉장히 피곤해져서 자주 곤혹스러워지곤 했다. 그림은 그런 나를 괜찮다고 위로해 주고 늘 함께해 주고 늘 내 편이 되어 주었다. 못 그렸다고 왜 그리했냐고 윽박지르지 않고 찬찬이 들여다보게 만들고 받아들이도록 도와주고 소중하다 여기게 해 주었다. 누구를? 나를. 그래서 그린다. 바로 내가 그리는 첫 번째 이유다.
못 그리지만 처음 그렸던 순간부터 그리는 게 좋았다. 무디기만 한 줄 알았던 내 손끝에서 펜이 움직여 형체가 만들어지다니 더 신기한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리는 재미를 알아가기도 하던 시간이었는데 반 년쯤 지나 그림을 다시 보면 좀 나아진 듯해서 기뻤다. 처음에는 이 그리는 즐거움을 아무도 몰랐으면 하고 바랐었다. 나만 그림과 연애하고 싶었으니까. 이제는 이 즐거움을 누리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으며 그린다. 그림에 아무 재주도 없는 나 같은 사람도 그렸으니 누구든 그릴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서. 이게 내가 그리는 두 번째 이유다.
그리기 시작한 지 불과 1년이 안 지난 어느 날, 빨간 차양막이 드리워진 뉴욕의 카페 하나를 색연필로 그렸다. 아직 색감이 부족할 때라서 흑적색 비슷한 빨강으로 자꾸 어둡게 색이 입혀지기에 더 건드리고 않고 놔두었다. 매일 새 그림을 그리기 위해 스케치북을 펼치면서도 한 달이 넘도록 그냥 넘어가다가 하루는 마음을 다잡아먹고 그 어두운 빨간 카페를 펴놓고 지우개로 흑적색을 모두 지우고 밝은 빨강으로 새로 채웠다. 아...... 이게 화해로구나 싶었다. 잘못된 그림도 그림이지만 잘못 그려놓은 나와 오롯이 마주하는 것 말이다. 이 그림과 다시 마주할 용기를 내는 게 힘든 일이었구나. 언제든 이렇게 용기를 내야 화해라는 걸 얻을 수 있구나. 나와 하는 화해, 내가 그리는 또 하나의 이유다.
<뉴욕의 빨강 차양막 카페> 종이에 색연필 2018 Lydia
그림은 나의 지금을 어루만져 주는 듯하다. 쓸쓸하기만 했던 나를 토닥여 주는 듯하다.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좀 그래도 괜찮다고. 그릴수록 지금 여기 있는 내가 좋아졌고 사랑스러워졌으며 언젠가 한 번은 해 주고 싶었지만 못 했을 말을 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 따뜻한 말을 찾아가는 길이 계속 그리는 이유다.
성이 나 속이 부글거려도 그리면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내가 바라는 만큼 남이 내게 해 주지 않을 때도 그리는 동안 풀리는 게 느껴졌다. 그리면서 내가 자라고 있었던 걸까.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부리기만 했던 사람에 대해서도, 자기 말을 들으라며 나를 끌고 가려고만 하던 사람도 그리면서 잊을 수 있었다. 펜 스케치가 색을 입을 때 내 마음에도 예쁜 색 밴드가 얹히고 반짝거렸다.
세상에! 내가 그리는 이유는 이렇게나 많다.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남의 눈 의식하지 않고 그리면 된다는 점은 2년 넘게 참여하는 온라인 프로그램 <1그림일기>를 이끄는 육은주 코치가 늘 일깨운다. 못 그린다 생각하지 말고 손을 들어 무엇이든 잠깐이라도 그리라고. 별것 아닌 한 번의 손놀림으로 일상의 예술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말이다. 그림으로 우리가 누구인지 보여줄 수 있다고도 내 독학에 지대한 공을 세운 또 다른 온라인 강사는 말했다.
자주 즐겨 보는 동영상에서 수채화 강사 사라 크레이는 매번 외친다.
"남의 그림과 비교하지 말라! 자신에게 친절하라! 그리면서 재미를 찾아라!"
이 말들을 가슴에 새기고 또 새긴다. 그리며 좋으면 그뿐 아닌가. 그리며 위로 받은 3년이라는 시간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기도 했다. 코로나 시국이 진정되지 않아 5월 전시회를 미뤄야 하나 싶었으나 나만을 위해 고민했고 결정했다. 전시해 보자. 나만의 길을 걸어가 보자. 천천히 꾸준히!
누가 어느 그림을 좋아했는지 기억해 두었다가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참 기쁘다. 내 그림을 좋아해 주면 나는 하늘로 날아오른다! 내가 위로 받으려고 그리지만 내가 그리는 이유를 이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내 그림을 그저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시간. 카페의 손님들이 내 그림을 찬찬히 봐주는 모습에 눈물이 찔끔 났다. 내가 그리는 강력한 이유가 새롭게 추가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