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9 울산 2일차 - 주자들 이야기

by 베루

땀 흘리면서 자고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몸 상태가 회복이 안돼서 실망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은 주자 집결지가 두 군데인 날이라, 나는 첫번째 집결지에 배치되어 어제와 동일한 울산 시청에 갔다. 가는 길에 꿀 바른 백설기와 사과를 씹어 삼키면서 감기 극복의 의지를 다졌다. 몸 상태 안 좋다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쓰다가는 여기도 성화봉송 연재가 아니라 투병기가 되어버리겠다 하.


오늘까지 8일째 성화봉송을 하면서 한번도 벌어지지 않은 일이 오늘 첫번째 구간에서 일어났다. 주자들을 슬랏으로 보내고 집결지에 남아 생중계를 보던 프리젠팅 파트너 3개사와 조직위의 데스크에서 일제히 “아~”하는 소리가 들렸다. 토치 키스 때 실제로 키스를 하는 주자들이 나온 것이다. 막 한 것이 아니고, 3번 주자(여)와 4번 주자(남)가 토치 키스 때 4번이 3번에게 반지를 내밀며 프로포즈 후 진짜 키스를 한 것이다. “어떻게 프로포즈 했어?”라는 주변의 물음에 이 두 사람은 아마도 늘 자랑스럽게 말할 것이다. “우리가 말이야~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봉송 주자로 뛰었는데, 성화봉송 도중에 프로포즈를 했지. 음하하!” 행복하세요!


두번째 구간은 삼성 주자 6명으로만 이루어진 소규모 구간이었다. 집결 시간 30분 전 전화를 돌렸는데, 한 명이 전화를 안 받는 거다. 안 그래도 오후 구간에 뛰기로 했던 주자가 못 온대서 대체 주자를 스탭들 중에 찾고 있었는데, 이렇게 또 안 오면 누가 뛰어야 하나 우리 주자 운영팀을 한 명, 한 명 생각해보던 중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이번 구간 주자들 번호가 아닌데 누구지 하면서 전화를 받았더니 전화 안 받던 바로 그 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원래 알던 사람한테 이야기하듯 “아휴 안 오시는 줄 알고 덜컥했어요 ㅠㅠ”라고 했다. 그분은 무사히 주자 교육 시간까지 도착해 잘 뛰고 흡족한 마음으로 귀가했다.


오전을 마무리하고는 나머지 스탭들이 데스크를 운영중이던 두번째 주자 집결지로 이동했다. 울산 동구청이었는데 화단도 잘 꾸며져 있고, 군데 군데 나무판에 새긴 격언들도 있어서 정겨웠다.


오후에는 슬랏에 나가야 했다. 아침에 못 온다고 연락한 사람 대신, 성화봉송 기간 동안 우리의 의식주를 챙겨주는 RON (Remain Over Night) 총괄인 팀원이 대체 주자로 뛰기로 했기 때문이다. 어떤 스탭에게 들어보니 울산은 출퇴근 시간 외에는 길가에 사람이 없대서, 썰렁한 곳에서 뛰게 할 순 없다는 일념으로 최대한 많은 인원이 슬랏으로 나갔다. 교통 통제 전 가있으려고 서두르다보니 1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뭘 하면서 기다릴지 둘러보니 바로 뒤에 바다가 있었다. 바다에 가서 잠깐이나마 여행 온 기분을 좀 냈다.


와! 바다다!


잠깐의 일탈을 마치고 슬랏으로 나가보니 동네 노인들이 나와계셨다. 본 행렬보다 먼저 도착한 어드밴스 차량이 주민들에게 파란 깃발을 나눠주고, 음악을 울리며 분위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곧 이어 주자 버스가 왔고 주자가 내렸다. 우리 팀 사람이 뛴다는게 너무나 신이 나서 다들 소리를 지르고 사진을 찍고 폴짝폴짝 뛰었다.


우리 팀과 뒤로 보이는 삼성 카라반


곧 이어 앞 주자가 성화를 들고 도착했고 담백한 토치키스 후 우리 팀원이 달렸다. 얼굴에 웃음이 만연하면서도 멋쩍게 “우리밖에 없어~”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그 소리 다 생중계로 나가는데 (ㅋㅋ). 신나게 뛰신 후 성화를 최연소 주자 - 개월 수까지 따져본 건 아니고, 만 13세 이상만 주자가 될 수 있는데 이 친구가 2004년생 - 에게 넘겨주었다. 04년생 주자는 딱 보기에도 앳된 모습이 무지 귀여웠는데 성화를 들고 달리기 시작하니 더 귀여웠다. 우리 친구, 오늘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세요~


다시 주자 집결지로 복귀해 방금 응원한 팀원, 04년생이 속한 구간의 주자들이 돌아오는 것을 환영해주고, 성화봉 증정 시간을 가졌다. 04년생 소년의 어머니는 소년이 도착하기 전부터 삼성 데스크에 오셔서 어디서 결제하면 되냐고 물으셨는데, 속닥속닥 비밀을 말씀 드리니 입을 다물지 못하며 좋아하셨다. 소년은 성화봉 선물에 대해 알자마자 이렇게 소리쳤다. “와!!! 이제 애플꺼 안 써야지!”


한 부부는 부인이 주자로 뛰고 남편은 아이들과 응원을 왔는데, 소년이 애플을 그만 쓰겠다고 선언할 때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거봐 내가 삼성에 응모하라 그랬지?!”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기분이 좋아지는 하루 하루다. 내일도 주자들에게 잊혀지지 않을 하루를 선사하는데 일조해야지! 앗 어느샌가 나 서비스 마인드도 갖추게 된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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