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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켈란 Aug 26. 2023

[단편소설] 화영의 배신-5

‘급행 여행’ 꿈결 같던 제주도


‘급행 여행’ 꿈결 같던 제주도


겁이 많은 화영은 새로운 세상이 어렵다.


나란히 걸으며 손을 잡고 편한 미소를 짓기까지 인내심이 필요한 아이다. 반면 ‘내 사람’이다 싶으면 ‘바라기’가 된다.


급한 볼일이 없으면 외출을 거절하는 집순이다. 가끔 나가도 늘 똑같은 길. 주로 여의도 아니면 청담동. 누구나 꿈꾸는 해외여행 따위는 화영의 버킷리스트에 없다.


‘꼭꼭 숨어라’ 했던 화영이 당장 내일 여행을 떠나자 했다.


“제주도 가자!”


“기꺼이 가야지. 이런 즉흥적인 여행 아주 좋아!”


삶에 얽매이지 않고 발걸음 닿는 대로 살고 있는 한량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동행하는 멤버는 넷. 여 3(나, 화영, 남희) 남 1.(?) 딱 좋다.


다음날 아침 8시 김포공항 1층 파리바게트. 알록달록 쁘띠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채 멀뚱히 앉아 있는 화영이 귀엽다.


화영은 단벌로 왔지만 짐이 많았다. 주당답게 와인 8병을 에코백에 빼곡히 담아왔다. 체력이 약한 아이인데 ‘술의 힘’은 대단하다고 박수쳤다.


간단히 브런치를 먹고 있는 도중 두 사람이 왔다. 역시나 발랄한 남희는 옆에 멋쩍게 서있는 남자사람친구를 소개했다.


“이름은 뀨야. 프랑스에 갔을 때 우연히 친해진 사이야. 파리에서 온 지는 한 달쯤 됐고 송도에서 꽃 파는 남자야”


파리지앵 느낌이 물씬 났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구찌. 화영이 만큼 낯가림이 심한 뀨였지만. 한 마디 칭찬에 마음을 열었다.

 

“어깨랑 삼두 이두 어쩜 그래? 만져 봐도 돼?”


하하호호. 화기애애.


급하게 떠난 제주 여행이 시작됐다.


제주 공항에 도착하고 렌터카를 빌렸다. 차 트렁크에 대충 짐을 구겨 넣고 애정하는 애월로 향했다. 섬에 왔으면 바다를 담아야지.


해변에 있는 기다란 벤치에 나란히 앉은 네 사람은 한동안 대화가 멸종됐다. 태양이 눈부셔 반짝거리는 찬란한 바다가 주는 찰나는 꽤 길었다.


침묵을 조금 부시고 옆에 앉은 화영에게 속삭였다.


“갑자기 왜 여행을 오고 싶은 거야?”


“떠돌기 좋아하는 언니랑 떠나보고 싶었어. 나도 나 자신에게 놀라워. 언니가 그만큼 좋나 봐”


솔직한 화영이 달콤하게 건넨 말에 기분이 봉봉봉. 조금 쑥스러워 화영의 볼을 꾹 눌렀다. 언니가 더 잘할게.


“이제 장보고 숙소로 가자! 고기고기 회회!”


역시나 발랄한 남희의 지휘 아래 우리는 우르르 렌터카에 몸을 실었다. 귀여운 미래중년들이다.


드라이브에 음악이 빠지면 배신이지.


해서 틀었다. 모두가 둠짓둠짓할 수 있는 브로스가 부른 ‘WimWin’


여기서 멈추지 마라  

win아 win아

윈 내가 기다려 왔다 인아 인아

나 때론 참으며 지켜본다

인아 인아 워워워워워 

여기서 멈추지 마라 win아 win아 

윈 내가 기다려 왔다 인아 인아 

나 때론 참으며 지켜본다 

인아 인아 워워워워워

여기서 멈추지 마라 win아 win아

윈 내가 기다려 왔다 인아 인아

나 때론 참으며 지켜본다

인아 인아 워워워워워

그대 걷고 있나 그대 뛰고 있나

나는 하늘을 난다


뀨만 조용했고 셋은 하늘을 날았다. 운전대 휘청.


대형마트에 도착한 우리는 커다란 카트를 밀고 입장했다. 나랑 남희가 보이는 대로 마구 주워 담으면 화영은 뺐다. 뀨는 덩그러니 뒤 쫄쫄. 살림 잘하는 화영 덕분에 신속하게 실속 있는 장을 봤다.


숙소는 초록을 거머쥔 독채 펜션이었다. 와인 한 모금 마시지 않았지만 피톤치드에 취한 듯 홀린 듯  잠시 숙소 주변을 떠돌았다. 마침 사장님이 상추와 고추를 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 오늘 오신 귀한 손님이구나. 반가워요. 이따가 바비큐 할 때 여기서 다 따먹어요. 공짜!”


청량하게 상쾌한 주인 닮아 숲 펜션에는 푸릇한 기운이 넘쳤고 해 질 녘 노을에 온기가 일렁였다.


Party Time!


우리는 소중하니까 ‘소’를 먹었다. 굽기 담당은 화영. 야채 담당은 남희. 나와 뀨는 세팅하기. 야외 바베큐장에 있는 커다란 식탁은 금세 안주들로 가득 찼다. (휴지 빼! 물병 빼!)


소주만 마셨던 어제의 나. 새로운 술친구 덕분에 와인에 입문했다. 서울에서부터 함께 온 와인 친구들은 야속하게도 금세 떠났다.


아득히 취한 오랜 밤이었다.


정답고 뭉클한 대화들이 오고 간 새벽이었다.


너와 나눈 기억나는 한 마디 한 마디.


“그저 곁에서만 있어도 행복해”


“서로에게 거짓은 없기로 해”


“평생 갈 사이인 거 알지? 기억해”


“요즘 언니 덕분에 웃어. 진심이야”


“화영아. 넌 참 예뻐”


“언니는 주머니 넣고 다니고 싶어. 귀여워”


“어깨랑 무릎은 언제든 네 꺼해”


“인연이 참 신기하고 귀해”


“그럴 일 없겠지만. 배신은 하지 말자”


그랬었다.


배신은 하지 말자 했다.


화영아 꿈결이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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