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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켈란 Aug 26. 2023

[단편소설] 화영의 배신-4

언니‘만’ 있으면 돼


언니‘만’ 있으면 돼


극적인 하룻밤이었다.


연태고량주 대자 두병은 벌써 다 비웠다. 민정 집 냉장고에 서있는 소주들도 다 꺼내 “한 잔해!”가 마지막 기억이다. 블랙아웃.


“이모~이모~일어나! 집에 가야지”


귀여운 조카 민우가 소파에 구겨져 잠이든 내 두 볼을 가로로 늘렸다 줄였다 장난쳤다. 깨자마자 깊은 속에서 올라오는 연태고량주향. 나쁘지 않았다.


“화영인?”


숙취에 정신 나간 동생을 위해 김치콩나물북엇국을 끓이고 있던 정다운 민정. 가벼운 탄식을 뱉으며 웃었다.


“어이구. 어제 둘이 서로 좋아서 난리 났더니만. 화영이도 엉망진창 돼서 집에 갔어. 살면서 그렇게 취한 건 처음 보네”


그래도 집에는 갔구나. 어마어마한 주량에 감탄했다.


그날 이후 화영과 ‘단짝’이 됐다.


‘내일 없이’ 시간의 바깥에서 살며 매일 만나고 마셨던 그날들이었다. 루틴이 생겼다. 해 뜨면 서로에게 메시지를 보내거나 통화를 했다. 그날도 화영의 첫마디는 설렜다.


“언니~오늘 뭐 해? 만날까?”


“어쩌지. 오늘은 압구정 로데오에서 약속이 있어”


“누구 만나는데?” (볼멘소리)


“술친구들. 올래? 너만 괜찮으면 다들 좋아할 거야”


“응응! 갈래. 난 언니만 있으면 돼”


정말이었다.


그 아이에게는 나만 있으면 됐다. 오징어불고기 맛집에서 삼삼오오 둘러 앉은자리. 마주 앉은 화영의 시선은 오로지 나였다. 내 술잔이 비워지면 채워주고 내 이야기에만 웃었다.


그런 화영을 보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배우 박보영을 닮은 귀여운 기자 후배 무나는 힙한 곳을 좋아하는 너드이자 경험충이다. 낮술을 약속한 우리는 ‘힙지로’ 을지로 3가에서 만났다.


이날도 화영은 언니‘만’ 있으면 됐다.로 참석했다. 후배와 동갑내기라 인간관계 단순한 화영이 새 친구를 사귀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쨍 한  한 여름.


지하철역 을지로 3가 8번 출구 앞. 후배와 먼저 만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며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멀리서 걸어오는 화영이 보였다. 잊을 수 없는 등장이었다.


을지로 아니고요. 청담동에 가야 할 복장이었다. 명품으로 취장 한 올 블랙. 디올 원피스를 입고 금장 샤넬 클래식 퀼팅백을 맸다. 차고 있던 롤렉스시계는 반짝거렸고 나를 발견한 화영의 표정도 하얗게 밝아졌다.


“오늘 무슨 날이야?”


“언니에게 잘 보이려고 꾸며봤지!”(들뜬 목소리)


“인사해. 둘이 86년생 친구야”


“안녕!” (무나)


“… 안녕” (화영)


민망한 온도차.


간극을 줄이기 위해 서둘러 음식점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NG였다. 폭염주의보에 감자탕 집이라니. 을지로에 ‘정말’ 오랜만에 와 본 화영이 가 본 추억의 맛집 ‘동원집’.


입구에 나란히 앉은 세 사람은 감자탕 중자와 소주와 맥주를 주문했다. 8:2 비율로 시원하게 말은 맥주와 소주도 별 수 없었다. 선풍기 바람은 미미했고 등줄기 타고 그어지는 땀은 어마했다.


화영은 여전히 언니 바라기. 후배가 친해지려고 이말 저말 물음표를 던졌지만 화영은 단답형 마침표였다. 3교대 근무로 일하는 무나는 내일 새벽 근무라 먼저 가겠다고 일어났다.


안녕한 후배에게 문자가 왔다.


“선배. 오늘도 즐거웠다. 근데 이건 내 느낌이긴 한데. 그 아이에게서 선배를 소유하려는 욕심이 보여 우려가 좀 되네”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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