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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young Jul 16. 2022

그  집

강릉 초당 모란 허난설헌

 



 마당을 나눈 담장을 돌면 조화롭고 평온한 기운마저 느낄 수 있는 작은 별채들과 낮은 툇마루가

있어 그곳에 앉아 오래된 감나무의 무성함을 보던 가을 정원도

도시에선 귀한 대접받는 토종 모란과 작약들이  무리진 늦은 봄날에

동양화 속을 잠시 들어선  고전적 기분도 된다.

부담스럽지 않은 정감들이 곳곳에 서린 이 집의 가족들이  모두 모진 풍파 속을

헤매다 처연한 운명을 맞아야 했는지는 그래서 늘 의문이지만...

 

  어느 해 수능이 끝난 아이들과 졸업여행같은 걸 갔다가 잠시 들른 경포대에서

 처음 본 이 집은 겨울 초입 바람 속에 잿빛으로 웅크린, 그녀의 시 '오래된 집'의 구절처럼

 거뭇거뭇 이끼만 가득한 고택이었다. 적막한 기류가 예사롭지 않아 다시 보게 되리라 예감은 되었지만...

 곁에 붙은 유명 순두부집 명성보다 못한 듯 사람들은 식사를 마친 후 무너진 담장을 밟고 건너 와

 툇마루에 커피 한 모금을 나누다 서둘러 떠나곤 했다.

 모두들 오죽헌에 들러 율곡의 어머니를 반드시 챙기고 가던 강릉이었다.


  조선 시대 여인으로 유일하게 타국에서 인정받아 발간해 준 자기 가진 누이와 

 역사를 100년쯤 앞당김하는 멋진 꿈을 꾸다 능지처참까지 간 동생 허 균의 생가...

  앞선 가치관을 가진 부친 덕에 문재를 키우고 걸출한 남자 형제들의 비호 속에 자랐지만

  몰락해 가는 친정을 지켜보며 자신의 비운의 삶도 담담히 예견하던 난설헌이 

 그날은 겨울바람 속 마루턱에 작은 명함으로 누워 있었다. 그때의 오랜 시 몇 구절이 다시 찾아야 할

  숙제처럼 오래도록 잊히질 않았다.  


 아이들의 교과서에서 깊은 문학성과 그녀의 일생을 탐구케 하고 다양한 예술 영역에서

나를 존재시킨 드문 중세 여인으로 구현되기도 하는 즈음의 난설헌

죽기 전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불태우라 했다는 그녀는 이런 상황들을 어떻게 여길려나?

  이제 낯선 귀부인이 된 초상화로 윤기나는 안방에 앉혀진 그녀지만 한적한 뒷채 어디쯤 말없이 피어나

자색 모란 한 포기의 여운에 그녀를 더 느끼고 올 수 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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