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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young Jan 01. 2024

겨울 여행

낙산사, 설악, 동해



 한 해가 끝나갈  즈음 강원도 바닷가에 잠시 들렀다. 

11월 한 달을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힘들게 보낸 탓에 겨울바다 곁에 잠시 쉬었다가

일정 시작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재건축 후 처음 가보는 낙산사도 궁금하올해를 넘기는 의미의  일출보기도 

한 번쯤 해볼까 한 괜찮은 계획이었다.

가을이면 설악과 함께 자주 가던 동해바다는 나이가 들면서는 겨울이 더 잘 어울리는  같다. 

깊은 동해의 물살은 더욱 짙푸르게 변하고 설악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얼굴을 쨍하니 얼게 한다.

미루어 겨울 해산물들은 또 얼마나 좋은가

청정지역의 소라, 멍게, 해삼 이런 류를 잘 먹고 자란 어린 시절 탓에 항상 수도권의

이런 것들의 부재에 목말라 는 편이다.

 늦잠을 잔 탓에 일출은 포기하고 오랜만에 느린 조식을 먹었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작은 호텔이었지만 모든 것이 적당히는 충족되는 곳이라 옆 친구는 다음까지 기약한다.


 오래전 불교 신자인 직장 동료들을 따라다니며 들렀던 낙산사 홍련암, 그 발아래로 마음을 빌던

낭떠러지를 보러 내려갔다가 쌀 한주머니 가만 올려놓고 나왔다.

이제 예전처럼 아들을 위해서 애써 기도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챙겨야 할 시점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 나를 대신할 아들을 위한 사랑도 느낀다. 

정말 소중한 것들이 떠날 때는 섭섭하기도 하지만 그것들이 지워 주던 무게감 때문에 한참 지나면

홀가분해져 있기도 하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의 슬픔이나 아들의 성장 같은 것이 그렇다.

 거친 동해의 물살을 가르고 선 홍련암은 여전히 아름답고 비장하다.

이런 곳의 사계를 바라며 수도했을 성현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싶던... 이렇게  자연 앞에 서면

인간의 고뇌는 덧없이 작아져 버린다.


 바닷가 곁 불상과 오래전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별채들까지 기분 좋은 차가움 속에 산책했다.

이제 제법 익숙해진 지인동행이라 가식 없이 말하고 자주 웃게 되는 편이다.


 

  설악으로 올라가는 길은 공기가 청량해서 유리창 너머로도 그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얼어붙은 땅 위를 힘주며 걷는 발끝이 위태하지만 기회가 있을 땐 무조건 가야 하는 오가닉 산행...! 

내려오는 길에 눈이 치워진 한 찻집에서 생강차 한 잔을 시키  덮인 설악의 한 자락을  있으니

11월에 내렸던 첫눈이 생각났.

 그날 때늦은 사랑니 하나를 대학병원까지 가서 수술하듯이 뽑고 조금 번아웃 상태였다.

피 묻은 솜을 물고 억지로 잠  애쓰는데 넓은 거실 창문으로 소리없이 쏟아지 눈발...!

12월이 되기  오는 이른 첫이었다.

 핑계로 마취도 안 풀려 부은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차를 끌고 나갔다.

이를 아프게 뽑은 것이 억울한 건 지 눈이 빨개져 울었던 그즈음스트레스가 서러운 건 지

올해의 첫눈은 그랬다.


 추워도 아이스커피를 외치며 들어섰던 다양한 국적으로 모인 듯한 옆자리 대학생들이 허브 맛 나는

초콜릿 건네준다. 인사를 나누다 보니 뉴저지에서 온 여학생이 있어 반가웠다.

살얼음 낀 겨울 호수를 바라보던 오래된 목조 건물의 리조트.. 뉴저지의 휴양림 '모홍크'의 풍경이

잠시 스쳐갔다. 다시 한번 가볼 수 있을까 모르겠다.

 또 한 번의 울이 창밖으로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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