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해드리다 보면, 자아 찾기를 평생하고 있는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형이상학적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고, 분석적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죠.
어떤 모습을 바탕에 두고 있는지에 상관없이 공통된 모습이 있습니다.
행복을 못 누려요.
행복을 느끼고, 행복을 맛보고, 행복을 음미하고, 행복한 순간 안에 있는 것을 못하죠. 계속 자아 찾기를 하고, 분석하고, 생각하고 비교하느라요.
자신의 행복을 위한 변화를 가는 것에 어려워합니다.
완벽한 것, 정확한 것, 확실한 것, 명확한 것, 그런 것을 찾느라 찾고 수집하고 모으고 저장하고 쌓아두기만 해요. 그럴싸한 좋은 글귀나 내용들을요.
그리고는 인위적으로, 부자연스럽게 그런 글귀를 되뇌고, 그 내용을 흉내 내고 연기하죠.
그러고 있는 것을 충분히들 해보시고, 행복을 위한 긍정적인 자기 암시처럼, 마인드의 영역으로, 결심과 생각의 차원으로, 스스로에게 행복을 인위적으로 주입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지 그러는 것을 멈추게 됩니다.
형이상학적이고 분석적인 자아 찾기 하는 것을 이제 그만할 때가 된 것이죠. 저런 식으로 삶을 살면서 행복에 가까워지려고 애쓰는 것은 책 보고 춤을 배우는 것과 같아요.
저에게 있어서는, 서산 벌천포에 있는 칼국수 집의 감태 바지락 칼국수가 행복이었어요.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동네 제과점의 휘낭시에(피낭시에)와 깔끔한 아메리카노가 행복이었어요.
호수가 앞에 보이는 곳에서 보낸 시간이 또한 행복이었죠.
그리고 이러한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소소한 시간들이 저에게 안겨다준 것은 변화를 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당신이 행동을 못하는 이유는, 그래서 자아 찾기만 수집가처럼 하고 있는 이유는, 단지 그런 것을 모르고 있거나 잊고 살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좋은 영감과 기운이 소모되어 있고 고갈되어 있는 채로 자신을 방치하고 있어서입니다. 그런 시간과 상황의 결과인 것이죠.
행복을 관념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사람처럼 변화를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그 방법을 찾기보다, 변화를 할 수 있는 감각과 근력, 그런 상태의 사람이 먼저 되는 것이 행복을 위한 변화를 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자신이 심리 정서적으로 너무 소모되어 있고 고갈되어 있다면, 어떤 방법을 접하고 변화를 시도해도, 금방 다시 돌아오거나 포기하거나 또는 변화한 이후 삶에서 다시 공허함과 불안정함을 갖게 될 것입니다.
좋은 영감과 기운을 주는 그런 곳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회복하고 충전하며 삶을 생명력 있게 살아가는 사람과 그냥 계속 소모되고 고갈되는 상태에서 의지와 마인드로, 자기 암시와 노력으로 삶을 인위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차이와 같지 않을까요?
저는 당신이 전자의 모습을 살아가는 선택을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노오오력을 해서 행복해지려고 하는 것 자체가 행복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행복과는 다른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