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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히유영 Aug 13. 2019

아내에게 취미를 선물했다

 부디 일보다 즐겁게 취미 생활을 해야 할 텐데 by 유자까

최근, 아내 S는 미디(midi)를 배우기 시작했다. 39살, 예전 같았으면 무언가 새롭게 배우기 늦은 나이라고 할 텐데. S는 무척 진취적으로 도전했다. 일 밖에 모르던 S가 좋은 취미를 가진 기분이 들어 좋다. 워커홀릭 S가 일에서 벗어날 기회라니, 얼마나 좋은가. 실제 자기 일을 즐기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크리에이터가 적성에 잘 맞는다고 해야 할까.


S는 영상을 만든다. 첫 직장은 방송국이었다. 나름대로 인정받으며 일했고, 다큐멘터리 제작을 중요하게 여기는 내부 분위기에서 메인 기획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방송국에서 7년간 일하고 퇴사한 뒤, 나와 함께 일했던 언론사에서도 평가가 좋았다. 영상 반응도 좋았다. 유튜브에서 수십만 명 이상 시청한 영상도 몇 개 있고 하니, 기록이 나쁘지 않다.


영상 반응도 좋겠다, 거기에 인정까지 받으면 피곤마저 잊는 스타일이다. 첫 직장에서 일할 때, 집에 며칠씩 못 들어오던 기간이 있었다. 방송 일정이 임박하면, 짧게는 하루 길게는 사흘 정도 회사에서 자며 일했다. 외박한 날이면, 갈아입을 옷을 챙겨 가져다주곤 했다. 힘든 일정에 S도 불만이 많았다. 그런데, 신기하게 내부 시사에서 늘 평가가 좋았다. 그런 밤이면 둘만의 축하 파티가 열렸다. 축하주를 마시며 기뻐하는 S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라고 했다. 이런 기간이 4년 정도 이어졌다.

 



물론 인정 욕구로만 일하지는 않았다. S는 영상 만드는 일을 즐겼다. S가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대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2017년 8월, 열대야에 고통받던 어느 날 S는 밤 깊도록 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새벽 한 시가 넘도록 잠을 잘 생각을 않는 S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러다 죽어. 제발 좀 쉬면서 해라.”
“오빠, 미안해. 그런데 멈출 수가 없어. 화내지 마. 그만 할게.”


시무룩한 표정, 금세 울음이 터질 기세였다.


“어휴, 알았어. 그럼 딱 한 시간만 더 하고 들어와.”
“정말? 고마워 오빠.”


그리고 S 표정을 보고 정말 소름이 돋았다. 마치 놀이터로 달려가는 조카와 똑같은 표정이었다. 일이 그렇게 신날까? 혼자 침대에 누우며 고개를 저었다.

아내는 자기 몸만한 카메라를 들고 전국을 누볐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여성이 아내.

하여튼, 절대 퇴사할 것 같지 않았던 S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번 아웃된 상황이었다. 놀이터를 좋아하는 아이도 그곳에서 하루 10시간 가까이 10년 이상 논다면 지치지 않겠는가. 나를 놀라게 한 건 S가 퇴사하기 한 주 전에 내게 꺼낸 이야기였다.


“이번에 퇴사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찾아가 볼까 생각 중이야. 한 번도 그런 시간을 보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온 S였다. 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좋은 성과를 내 부모와 주변 사람의 기쁨이 되는 걸 행복으로 여겼던 S가, 자기를 찾고 싶다고 말하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기뻐하며 격려했다. 진짜 환호성을 지르듯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래!!!! 정말 좋은 생각이야. 이번 기회에 그런 시간을 좀 보내 봐.”


그날부터 우리는 S가 어떻게 자기를 돌아보고 찾아갈 수 있을지 머리를 모으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음악’이었다. S가 처음 꾸었던 꿈, 그리고 돈 때문에 가장 먼저 포기해야 했던 꿈이 바로 음악 아니었던가.

 



S는 피아노를 잘 친다. 가장 먼저 고른 혼수도 디지털 피아노였다. 교회에서 만난 피아노 전공자들도 왜 피아노를 전공하지 않았냐며 아쉬움을 표한다. 회사에서 고액 후원자를 위한 모금 행사를 진행할 때, 독주를 할 정도로 실력이 좋다. 칭찬과 인정을 받기 좋아하는 S지만, 그런 날이면 늘 씁쓸해했다.


S는 6살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피아노 학원에 갔다. 그리고 7살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콩쿠르에 나가 계속 좋은 성적을 거뒀다. 예중 입학을 목표로 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6학년 2학기 때 일어났다. 학원 선생이 갑자기 어머니를 불렀다. 그는 S 어머니가 돈을 더 내지 않는다며, 다짜고짜 성을 냈다. 예중 입시를 준비하는데, 당연히 돈을 더 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당시에도 꽤 큰돈을 내고 있었는데, 어머니와 어린 S는 당황했다. 입시 준비를 하려면 교습비를 올려야 한다는 말도 일언반구 없었다. 예중 실기 시험을 며칠 앞두고 일어난 일이었다.


S는 처음으로 ‘더럽고 치사한’ 예술의 세계를 알았다. 그리고 그날 밤, 울면서 피아노를 배우지 않겠다고 했다. 부모님도 이 이상 지출하는 게 부담스러워, S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지금도 그 일이 마음에 쓰인다. 함께 술잔을 기울일 때면, S가 일곱 살 때 나갔던 콩쿠르 얘길 꺼낸다. S가 얼마나 피아노를 잘 쳤었는지 설명하며 S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학교 성적도 좋았던 S는 열심히 공부했다. 음악을 잃은 S에게는 성적 1등만이 남았다. 남들 다 받는 과외 한번 안 받고 혼자 공부해,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바로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대학 3학년부터 5년 정도 도전했지만, 사시의 벽은 높았다. 더 길어지면, 장수생으로 고시촌에 묻혀 지내다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여차저차 우여곡절 끝에 PD가 되었다.(이 부분은 다른 글에서 한 번 다루도록 하겠다.)

아내의 선생님을 찾아준 '탈잉', 참 고맙다

멀리 돌아왔다. S가 인생을 다시 돌아보며, 자기를 찾고 싶어 할 때 내가 음악을 가장 먼저 떠올린 이유는 위 몇 문단에 담겼다. S가 워커홀릭으로 지낼 때도, 나는 취미로 음악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다 2018년, 어느 방송전시회에서 만난 미디용 키보드에 흥미를 보인 모습을 보고 바로 생일 선물로 바쳤다. 생소한 ‘롤리’ 키보드와 아이패드 프로를 함께.


S는 흥미를 보였지만, 피아노와 너무 달라 어색해했다. 따로 배워보라 했지만, 음악 선생에게 교습받는 일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어린 시절 기억 때문일까. 많은 돈을 내고 음악을 배운다는 것에 반감이 컸다. 올해(2019년)도 어김없이 미디용 콘솔을 선물했다. 그리고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튜터도 찾아주었다. 개인교습이라는 사실을 생각했을 때,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배우면서는 가격이 많이 저렴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지금, S는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에 있다. 단순히 퇴사를 해서 그렇다기보다는, 자기를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퇴사 6주, S는 외주를 받아 집에서 일한다. 최근, 개인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다. 지금도 새벽까지 영상 편집하는 걸 즐긴다. 익숙한 놀이터는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니 어쩔 수 없다. 중요한 건, S가 현재 어떤 일을 도전하며 과거의 자신과 마주한다는 사실이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의 시작은 과거의 나와 대면하는 일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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