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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Jul 16. 2017

그 여行자의 집 (12)

2017년 봄, 마흔둘 경재의 그 해. #12

12.

 약속했던 7시가 지난 지 28분이 되었다. 12년 만의 만남인데 이렇게 기다리게 해도 되는 건지 미안함과 혹시나 화가 나서 가 버리진 않았는지 두려움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여유 있게 만나자고 할 걸. 거래처로부터 늦어진 마지막 컨펌을 확인하고 남은 일은 후배에게 맡긴 채 부지런히 사무실에서 내려와 건너편 건물의 서점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드는 설렘이다. H출구 쪽에 있겠다고 했는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진초록 목도리를 한 단발머리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뒤 돌아본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대로구나. 방긋 웃으며 다가오는 그녀에게 어색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갑자기 그녀와 함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밖에서 들어온 건 나인데.  

「잘 지냈어요? 하나도 안 변했네.」

「설마요~ 세월이 얼만데. 경재 씨는, 흠. 좀 더 멋있어진 거 같아요.」

「늙었죠, 뭐. 벌써 마흔인데. 까마득하네요. 세월이.」

어색함을 메우는 부산스러운 인사들을 주고받으며 정신없이 식당에 들어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녀가 내 눈 앞에 있다. 그녀의 얼굴에는 피해갈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인 양 약간의 주름이 보였지만 내가 알던 그녀보다 더 밝아 보였다.

「여기 괜찮죠? 기억에 같이 베트남 쌀국수를 먹었던 거 같아서.」

「정말요? 흠. 그건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베트남 쌀국수는 좋아해요. 신기하다. 그런 걸 다 기억하다니.」

불현 나만 기억하는 것이 서운하기도 하고, 12년 만에 만난 이 여자가 무슨 생각으로 대뜸 내 청에 응했나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 내가 짐짓 당황하는 새, 그녀는 메뉴판으로 보고 이것저것 묻더니 나에게 동의를 구하고 쌀국수 두 개, 애피타이저로 스프링 롤, 그리고 사이공 맥주 한 병을 시켰다. 종업원이 주문 내역서를 가지고 가고 우리 둘만 남았다. 그녀가 멀뚱이 나를 보고 눈을 몇 차례 깜박이더니 씨익 웃는다. 원래 이렇게 당찼던가?

「어떻게 지냈어요? 여행 중이라더니 언제 돌아온 건가요?」

「지난주 수요일에요. 1년 반 만에 온 거예요.」

「그렇게나 오래? 어디 있었는데요?」

「그냥 여기, 저기. 말하자면 길어요. 나 경재 씨가 날 어떻게 찾았는지, 왜 만나자고 했는지 궁금해서 나왔어요. 못 본 지 10년이 넘었는데, 그렇게 잘 알던 사이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여행이 끝날 즈음 딱 연락해서 만나자고 한 게 신기하기도 했고. 아마 여행 전이었으면 안 나왔을걸요?」

「그래요? 제가 운이 좋았네요?」

「그러게요. 어쩜 제가 운이 좋았던 걸 수도 있고요.」

맥주가 먼저 나왔고, 시원하게 맥주 한잔을 들이켰다. 나는 왜 그녀에게 만나자고 했을까? 그녀는 왜 나왔을까?



프로젝트 여행자의 집, 네 번째 이야기 中 :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는 글 참고

그 여行자의 집 : 1장, 단아의  이야기 2장, 경재의 첫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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