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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금술 스토리텔러 Oct 24. 2022

7개의 언덕 그 위에 서다

비행기를 두 번이나 놓치고서야 깨닫게 된 것 

바이올렛의 나라 포르투갈, 그리고 리스본 

페드로 4세 광장 보라색 꽃


리스본은 보랏빛으로 여행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유히 거리를 관통하며 지나는 트램을 보고선 리스본의 매력에 설레었다. 숙소를 패스하고 백 년 이전 시대로 데려갈 것만 같은 28번 트램을 탔다. 그리고 방에만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 오후에 신청한 골목투어에 참여하려고 밖으로 나왔다. 

골목투어는 그 도시의 가이드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들을 중심으로 안내하며 사진 찍는 법도 알려준다. 무엇보다 간간이 보너스로 사진도 서비스를 해주기  때문에 나는 일석이조의 이런 투어를 좋아한다. 예약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에 도착을 했는데 가이드는 미국에서 온 1명의 젊은 여성 여행자와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늦은 건가?' 시간은 늦지 않았는데, 그들이 일찍 온 것이었다. 약간 어색한 인사를 하고 투어는 시작되었다. 



리스본 언덕길을 걸어는 봤니? 걸어보지 않았다면 리스본을 안다고 말하지 마!

7개의 언덕으로 이뤄진 리스본은 말로만 듣던 것하고 천지차이였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로 예쁜 사진 찍고 싶은 욕심으로 참여하게 된 것인데, 이건 완전히 FM이었다. 높은 계단을 올라가고 또 올라갔다. 브라이튼의 세븐 시스터즈, 런던의 그 악명 높은 러셀 크로우 역이 절로 생각났다. 

하지만 비록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야 하는 것이 고생스럽기는 했어도 파두를 부른 가수들이 살던 집들처럼 곳곳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을 만큼 역사가 느껴졌다. 높이 올라간 만큼 다른 시야가 열렸다. 특히 그라사 전망대(Miradouro da Graça)에서는 리스본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는데 정말 멋졌다. 여행자들에게 제대로 리스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덕 투어를 한번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하지만 시간이 없는 여행자라면 트램 28번을 타면 가장 유명한 두 개의 언덕(바이루 알투와 알파마)으로 쉽게 갈 수 있다. 28번은 젊은이들이 많이 몰리는 지역 바이루 알투(Bairro Alto)와 낭만의 알파마(Alfama).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하는 바이샤(Baixa) 지구에 갈 수 있다. 바이샤(Baixa)는 영어로 low로 낮은 지역을 의미하는데 대지진 이전에 귀족들과 부유한 상인들이 살던 곳으로 현재는 가장 유명한 호시우 광장과 코메르시우 광장 사이의 직선거리인 아우구스타 거리를 포함한 쇼핑과 레스토랑이 밀집해있는 상업지구이다. 



상 조르지 성을 조망하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알파마(Alfama) 언덕의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Miradouro das Portas do Sol)'에서 나는 제대로 사랑에 빠져버렸다. 포르타스 두 솔이란 말은 태양의 문이란 뜻이다. 나는 이곳이 정말 좋았는데 말로 표현하기 힘든 행복감을 느꼈다. 그래서 다음 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으로 가던 중 반대편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바람에 비행기를 놓치고도 이제 제대로 즐길 수 있겠단 생각에 헤벌레 웃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파두 공연을 보러 가는 여유까지 부려봤다. 그 작은 카페에서 만난 파두 가수에게 왜 그렇게 끌리는지 또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곳 알파마(Alfama)에는 무어인들이 끼친 영향력의 무게를 이름에서 찾아볼 수 있다. Alfama는  아랍어 알 함마 (الحمّة) Al-Hama 또는 "al-hamma"에서 파생되었으며 그 뜻은 '따뜻한 물, 좋은 물의 근원'이다. 실제로 이곳에는 여러 개의 온천 분수가 있었고 그 흔적을 아직도 지니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알파마의 어원이 따듯한 물 좋은 물의 근원이라고 하니 이런 생각이 든다. 리스본 대지진 때 피난처가 되었던 이곳은 그야말로 '하소(불)' 이후 막다른 길에서 만난 용해(물)의 길은 아니었을까라고. 



정어리 축제가 열린 것인지 생선구이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사람들이 정겹게 삶을 짓고 있다. 나도 그 옆을 지나간다. 행복은 광고하지 않아도 쉽게 전염이 되는 모양이다. 그저 알파마 언덕길을 걸었을 뿐인데 머리에서 발끝까지 행복해졌다. 



처음에는 나를 곤경에 빠트린 포르투갈 남자가 너무 미워서 리스본은 패스하고 싶었다. 머리는 이해해야 된다고 하지만 마음은 속도가 느렸다. 원망했고 후유증도 남았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함께 할 이유가 없다며 이대로 끝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 이틀은 숙소에만 있었던 거였다. 

그런데 여행의 시간이 더해지면서 바래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누그러지니 무언가가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왔다. 미진한 감정을 남기는 '이것'의 실체는 무엇인지, 일어나야 할 일이었다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찾고 싶었다. 그러다가 비행기를 한번 더 놓치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해야 할 일이 남은 것임을. 

나에게는 아주 익숙한 습관이 있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두말 않고 조용히 관계를 끊어버리고 냉담하게 돌아서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일은 이런 식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래, 맞아! 매듭짓기, 매듭짓기가 필요한 것이었다.

보기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고, 싫으면 냉정하게 돌아서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오산이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또 다른 길에서 대상이 바뀐 채로 더 큰 것으로 해결하라며 다시 나타날 테니. 



그럼 너는 진심으로 사랑했니?

그리고 더 끔찍한 것은 내가 이 사람을 방패 삼으려 했다는 것이다. 사별이란 슬픈 과정을 지났지만 신화를 만들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듯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 허영심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있었다. 그래서 이 사람을 마지막으로 나를 완성시켜줄 존재로 기대한 것이었다. 그런 바람을 무참히 깨뜨렸으니 용서하기 힘들었던 것이었다. 그런 흑심이 있었음을 인정하기 어렵지만 인정해야 했다; 


포르투갈 호까 곶에서 들었던 이제 너의 길을 가라는 의미는 너 자신으로 홀로 서라는 것이었다. 자기 개성화의 길을 완료하라는 것이었다. 자기실현이란 누군가의 덕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닌 것이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화해였다. 나는 화해를 해야 했다. 그 사람과 관계가 더 이어질지, 이대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그 어떤 계산도 내려둔 채, 내가 할 일은 내가 해야 했다. 그것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길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에게 어머니를 뵙고 싶다 말하고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기차와 버스를 타고 나 혼자 찾아가기로 결심하고 포르투(Porto)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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