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사랑은 가공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나는 그녀가 부러웠다.
누군가의 뮤즈가 되어보지 못한 내 삶에 비해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베아트리체는 '거장 단테'의 뮤즈가 되었다. 이건 분명히 비교대상이다. 난 심기가 불편했다. 의심해 볼 대목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그들이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다는 '베키오 다리'에서 좀 더 감흥을 이어가 보기 위해 우피치 미술관을 지나 베키오 궁전 앞으로 갔다. 예전엔 푸줏간이었으나 지금은 보석상이 즐비한 명품 매장으로 변한 그곳, 운명적인 장소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기 위해 과감하게 약간 높은 둔턱에 올라가서 앉았다. 저 멀리 미켈란젤로 언덕이 보였다.
셀카를 찍기 위해 폰을 열었는데 사랑과 낭만의 도시 피렌체가 주는 온화한 기운 때문인지 여리여리 부드럽게 보였다. 꽤 마음에 들었다. "그래 좋아" 셔터를 여러 번 눌렀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난 꽃 미남들이 일제히 나를 보고 있었다. 사실 이때 좀 창피했다. 그런데 그들이 환한 미소를 보내는 게 아닌가. 어리둥절해졌다.
저들이 왜 저러지?
누군가가 사진을 찍어주는 것인가 싶어서 뒤를 돌아봐도 옆을 돌아봐도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누구를 향해서 저렇게 환한 미소를 보내는 거지? 정말 의아했다. 이 부분에서 저 꽃미남들이 나를 보고 웃었는지 다른 이유로 웃었는지 진위를 가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그들의 미소만으로도 이미 영혼에 불이 켜진 듯 환해졌다. 주목해주고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사랑은 에너지가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소중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이 기분 좋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 이 믿기 어려운 이상한 현상이 여기에서 또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번개처럼 오스트리아 비엔나 음악회 장면이 떠올랐다. 2015년 8월 31일 그날 나는 무엇엔가 홀린 것처럼 90분 공연이 이어지는 내내 '콘닥터'에게 빠져버렸다. 아이처럼 주목을 받고 싶어 졌고 그가 한 번만 나를 바라봐주면 소원이 없겠다고 빌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고 나는 좌절되었다. 그랬는데 거짓말처럼 공연이 마칠 때쯤 그는 내 쪽을 바라보았고 그 순간 내 영혼에 불이 켜졌다. 어두운 터널 끝에서 비로소 만나게 된 환희의 순간이었다.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희한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곧 하나의 깨달음이 왔다. 사랑이 빛이고, 빛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랑과 빛이 별개가 아니라 사랑이 곧 빛이라는 것이다.
사랑과 빛은 하나다.
그렇다면 저에게도 빛을 주세요. 저에게도 사랑을 주세요. 그동안 밀어내고 거부하던 기만성을 내려놓고 간절히 기도했었다. 그리고 9개월 만에 하늘에서 이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아, 벌써 다 잊고 있었구나;
데자뷔(Déjà Vu) 현상은 간절했던 순간을 상기시켰고 내 의식을 흔들었다. 시시비비를 이번 기회에 제대로 가려야 한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에고의 유령놀이'를 다시 시작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안 되겠다. 얘들아~단체로 가서 저 아이를 좀 위로해주렴!
사랑을 무시하고 빛을 찾는다는 건 모순이다.
'아, 저들도 키다리 아저씨가 내게 보낸 천사들이구나' 그제야 알아졌다.
해가 뜨면 순식간에 해무가 걷히듯, 난생처음 보는 이들의 미소가 해가 되어 내 마음의 해무를 단번에 걷어갔다. 무거운 짐짝 하나가 벗겨진 듯이 가볍게 춤추듯 걸었다.
그리고 잠시 후 누군가 다가왔다. “사진 좀 찍어줄 수 있나요?” 물었다. 물론이라며 흔쾌히 카메라를 받아 들고 뒤를 돌아보니 2~30명 정도의 학생들이 단체로 서 있었다. 깜짝 놀랐다. 이들은 어디서 나타난 걸까. 그래, 한 사람의 행동이 타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방금 전에 경험하지 않았는가. 이제 내가 돌려줄 차례다. 씩씩하게 다가가 적극적인 태도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빛의 속도가 더해지면서 박진감 넘치게 주문했다.
"다른 포즈 없어요?" "다른 포즈를 시도해봐요!" 라며 다양한 포즈를 취해보라고 큰소리로 주문했다.
Any other poses? Try different poses! poses!
광장에는 내가 외치는 소리만 들리는 듯했고 그들은 무대 위에서 리듬에 맞춰 힙합댄스를 추듯이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꿈을 꾸는 듯했다. 불과 한 5분이나 되었을까. 그 5분은 나의 에너지를 완벽하게 바꾸어버렸다. 우울한 기분은 어느새 사라지고 행복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나는 너무너무 행복해졌다. 홀로 고고한 척 살아가는 것보다 이렇게 함께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욱 숭고한 가치라는 것이 알아졌다.
너, 이런 사람이었어? 그런가? 나도 몰랐어!
웃음이 나오면서 제대로 허기가 느껴졌다. 새벽에 도착해서 하루 종일 피자 한 조각 외에 먹은 것이 없다는 것도 그제야 알아졌다. 망설임 없이 식당으로 들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했다. 아끼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나를 위해 제대로 맛있는 밥 한 끼 대접하고 싶어졌다. 나는 먹는 일에 무척 인색한 편으로 이례적인 일이다.
야들야들한 살코기는 숯불 냄새를 뿜으며 입안으로 들어와 살살 녹아내렸다.
천천히 음미하는데 눈물이 훅 올라왔다. 행복과 불행은 백지 한 장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밥은 그냥 밥이 아니었다. 밥은 사람을 살리는 치료제였다. 그렇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밥을 먹었다. 지금도 그때의 밥상을 잊을 수가 없다.
베아트리체의 특별한 매력, 특히 단테의 '뮤즈'인 그녀가 한없이 부러웠다. 하지만 이제 모든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단테에게 베아트리체는 사랑이자 곧 단테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빛이었다. 베아트리체를 통해 경험된 세계는 어둠과 빛처럼 차이가 확연했고 단테는 그 감정을 기억하려 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 사랑이라는 소중한 감정은 끊이지 않는 영감을 준 것이다. 사랑이 지속되는 한, 영감도 마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어떻게 한 번을 만나고 그럴 수가 있냐는 것은 우문이었다. 한 번을 만났든 두 번을 만났든 횟수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또한 단테는 융 아저씨의 말처럼 베아트리체를 통해 자신의 아니마(남성 속에 여성성)를 보았고 그녀를 이상화하는 과정에서 단테 자신의 아니무스(남성성)와 통합을 이뤄낸 것이었다.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통해 자신의 아니마와 통합을 할 수 있었던 거였다. 결국 단테를 변화시킨 것은 단테 자신이었던 것이다.
스스로 자기의 가치를 찾지 못하면 시선이 밖으로 향하게 되어 있고 자연스럽게 남과 비교하게 되어 있다. 그때 나에게 없다 믿으면 부러움이 올라오다 못해 나처럼 시기심이 올라오는 거다. 그럴 때 좋은 자극을 받게 되면 자신의 가치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고, 그렇게 자존감은 성장해가는 것이었다. 물론 나쁜 자극이 온다면 시기심이 자랄 것이다. 부러움과 시기심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니까.
결국 나의 내면으로부터 자긍심이 올라오지 않으면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의심으로 흠집을 내어보려고 했던 나의 시기심을 바로 잡는다. 내가 굳이 700년 전에 베아트리체를 대상으로 시기심을 벌일 일이 아니었다.
천천히 스위스로 가기 위해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5월 말 피렌체에서 피부에 닿았던 선선한 바람까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