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간다

by 안드레아

농구에서 테니스로 다시 돌아온 해가 2008년. 1988년에 처음 테니스 라켓을 잡았으나, 중고대학생 시절에는 테니스보다 농구에 미쳐 살았다. 그때는 농구보다 더 재미있는 스포츠가 과연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랬던 내가 중국에서 몸싸움을 피할 스포츠로 테니스를 택하고 다시 라켓을 잡고 나서부터는 농구가 급속도로 시들하게 느껴졌다. 그 이후로 11년 동안 테니스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고, 남들이 보면 거의 중독이 아닌가 의심할 만큼 빠져 살았다. 최소 일주일에 한 번, 많게는 네댓 번 이상 테니스 코트로 향했다. 약속이다 출장이다 해서 테니스를 못하는 날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대책으로 클럽을 여러 군데 가입해서 시간이 나면 언제라도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시합에 나가면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를 넘기면서 결승까지 일곱여덟 번의 게임을 소화한 적도 많이 있었지만 너무도 짜릿하고 흥분되는 시간이었기에 힘든 줄 몰랐다. 제법 무리한다 생각될 정도의 운동을 해도 하루 이틀 잘 쉬고 나면 금세 회복되었고, 바로 또 테니스를 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아침에 두세 시간 운동을 하고 오후에 누가 부르면 또 쪼르르 달려 나가 서너 시간을 다시 테니스에 빠져 지내기 일쑤였다. 동호회 사람들이 테니스를 몇 시간 하고 힘들어할 때에 나는 더 치고 싶어 안달이었고 바닥이 나지 않을 것 같던 체력을 과시하곤 했다.


남들이 엘보가 왔다며 고통을 토로하고, 종아리 근육이 파열됐다거나 무릎이 아프다고 할 때엔 그저 함께 걱정하고 빨리 낫기를 빌어 주는 정도였지 그 이상의 공감은 어려웠다. 지칠 줄 몰랐고, 아픈 데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딱 마흔이 되기 전까지 상황이다.


마흔의 문턱에 들어서자 약간의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2012년 초 중국에서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후 회사 테니스 동아리와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찾은 테니스 클럽에 들었다. 한겨울에 귀임했지만 테니스를 쉴 수는 없었다. 1월, 2월 영하의 날씨에도 주말 정모가 있는 날에는 눈비만 안 오면 테니스장으로 향했다.


어느 매서운 겨울날이었다. 체감으로는 영하 15도 정도 되었을까 싶다. 그러나 테니스를 생각하면 춥지 않았다.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을 즐기러 경쾌한 발걸음을 옮겼다. 추운 날이었기에 평소보다 준비 운동을 더 많이 해야 했지만, 스트레칭을 하는 둥 마는 둥 끝내고 게임을 시작했다.


겨우 오 분이나 지났을까. 상대가 리턴한 볼을 포핸드로 힘차게 받아치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테니스 라켓으로 내 다리를 " 딱! " 하며 내리쳤다.

그 순간 나는 " 악! " 하는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획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없었다. 어떤 사람도 어떤 물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현상이지?

대체 날 때린 건 누구야?

뭐가 날 내리친 거지?'

실제로 어느 누구도 어떤 다른 물건도 내 다리를 공격하지 않았다. 온몸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그 '딱! '하는 소리는 내 몸 바깥이 아니라 몸 안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나의 장딴지 근육 섬유들이 팅~ 하고 끊어지면서 내 몸 전체로 울려퍼진 소리였고, 마치 누군가 몽둥이로 나를 후려 패는 감각 바로 그것이었다.


코트 바닥에 주저앉아버렸고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었다. 장딴지 쪽의 통증이 너무 심했고, 온몸은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그 순간에도 테니스를 충분히 즐기지 못한 채 다친 것이 억울하고 안타까웠다.


처음 며칠 동안은 아프고 걷기조차 너무 힘이 들었다. 근육이 파열된 종아리는 시커멓게 피멍이 들었다. 딱히 병원에서 특별한 치료를 받은 건 없었다. 깁스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조심조심 움직이며 회복을 기다렸다.


그렇게 아프던 다리도 사나흘이 지나니 통증이 많이 줄어들었다. 일주일을 넘기고 열흘 가까이 지나자 걸음걸이가 편해지고 불편함을 크게 느끼지 않을 만큼 회복했다. 그때부터 조금씩 점프를 하면서 어느 정도 다리에 힘을 가하면 아픈지 시험해 보기 시작했다. 점프를 힘차게 하자 좀 아팠다. 며칠 더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일 출근을 하고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어디 빈 공간을 찾아 점프와 잔걸음으로 빨리 뛰기 테스트를 하며 몸상태를 점검했다. 약 이 주가 지나자 몸이 거의 회복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법 힘을 가해 높이 뛰고 빨리 뛰어도 아프지 않았다. 이제 테니스를 다시 할 준비가 된 것 같았다.


클럽 정모가 있던 날 두근거리는 맘으로 퇴근 시간을 기다렸다. 퇴근하면 테니스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일도 수월하게 끝내고 기분 좋게 회사를 나섰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당시 영동고등학교 부지를 빌려 운영하던 테니스장이 있었다. 몸이 회복된 후 그곳에서 처음으로 복귀전을 치르기로 했다.


" 이 프로! 벌써 나왔어? 아직 무리 아닌가? " 클럽 회장 형이 웃으며 말했다.


" 아, 예! 이 주 정도 푹 쉬었더니 거의 다 나은 것 같아요~~ ㅎㅎ 그동안 몸이 너무 근질거려 혼났어요! "


게임을 시작하기 전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몸상태를 다시 점검했다.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고 몸은 가벼웠다. 이제 게임을 하면서 그동안 운동을 못해서 답답했던 체증을 날려버릴 차례였다. 어쩔 수 없이 쉬었지만, 역시 푹 잘 쉬었더니 몸이 가볍고 에너지가 축적되어 파워가 더 늘어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정확한 타격이 어려웠지만 난타를 15~20분 치고 나니 영점 조정이 되어 스트로크가 잘 들어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게임이 시작되었다. 주특기인 '점프 서비스'로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면서 동시에 서비스 후 바로 네트로 전진, 발리로 포인트를 하나씩 얻었다. 서비스 후 잔걸음으로 빠르게 전진해 보았는데 다리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조금 더 격렬한 플레이를 해도 괜찮을 듯싶었다.


상대는 정직한 스트로크 플레이로는 안 되겠다 판단했는지 우리가 네트로 근접해서 플레이를 펼칠 때 자꾸 로브를 걸기 시작했다. 내 서비스가 정확히 들어갔으나 상대가 내 파트너 머리 위로 공을 넘겼다. 재빨리 방향을 바꿔 엔드라인 쪽으로 치고 나갔다. 그때였다.


빠악~~~~!


극심한 통증과 함께 나도 모르게 악! 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회복되었다고 생각했던 그 종아리 근육이 다시 터진 것이다. 후회와 아쉬움과 아픔과 분노 비슷한 감정들이 그 짧은 찰나에 동시다발적으로 내 온몸을 휘감았다. 나는 철인이 아니었다.


그렇게 평생 처음으로 근육이 파열되는 경험을 했고, 그로부터 꼭 5년 뒤에 다시 반대쪽 종아리 근육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나에게만은 찾아올 것 같지 않았던 그 전형적인 부상들이 내게도 정확히 같은 증상을 보이며 들이닥쳤던 것이다. 그것도 양쪽 다리에 공평하게 말이다. 처음 부상으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완전히 회복되었으나 잘 보면 종아리 모양이 다르다. 힘줄이 끊어진 부위가 다르고 그 부상 정도도 달라서 회복 이후의 근육 모양이 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양쪽 장딴지 모양이 많이 달라 이상했는데 시간이 몇 년 흐르자 그나마 차이가 줄어 그리 흉하지는 않아 다행이다.


근육 파열은 상당히 많은 테니스 애호가들이 경험하는 부상이니 별 거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아직 나에게는 장시간 뛰어도 지치지 않을 체력이 있었고, 무엇보다 테니스에 유리한 순발력과 빠른 주력을 가지고 있어 충분히 테니스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흔다섯 즈음되자 - 아니 실은 그보다 더 전이었을 거다 - 몸 상태는 더 나빠졌다. 스스로 인정하지 못할 뿐 더 오래전부터 나의 몸은 기능이 저하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중 하나는 이삼십 대 나이에는 주말 하루 종일 뛰어다녀도 푹 자고 나면 회복이 되었던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나마 잠을 여덟 시간 이상 푹 자 주면 피로는 많이 풀렸지만, 근육이 뻣뻣하고 여기저기 결리는 느낌이 영 개운하지 않았다. 뭔가 몸에 석회질이 많이 껴서 부드럽지 못하고 허리나 어깨가 돌아가는 반경도 예전보다 많이 줄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걸 깨달았을 때 좀 서글펐다. 나이가 들어가는 건 알겠는데, 좀 더 나중에 이런 증상이 나타날 거라 막연히 생각했었나 보다. 하지만 현실이 그랬다.


지지난 주 토요일에 결국 나의 테니스 역사에서 처음으로 '엘보'라는 걸 만나게 되었다. 우리말 표현으로 '반복사용긴장성증후군' 이라고도 한다는데 보통 '엘보'라고 말한다. 그 한 주 전쯤 하루 종일 걸리던 시합이 있어 땡볕에 무리를 하기는 했다. 잘 쉬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팔이 갑자기 덜컥 고장나 버렸다. 토요일 아침에 지인들과 가볍게 몸을 풀려고 하는데 백핸드 스트로크나 백핸드 발리를 할 때 공을 타격하는 순간 팔이 징징거리며 엄청난 통증이 따랐다. 딱 네 명만 모였기 때문에 나만 중간에 빠지기도 매우 미안한 상황이었다. 두 시간 동안 아픈 오른 팔꿈치를 왼손으로 주물러가며 꾸역꾸역 인내의 테니스를 했다. 너무 아프니 제대로 된 플레이가 될 리 없었다.


과연 얼마나 쉬어야 하는 걸까. 일주일이면 될까? 아니 2주 혹은 한 달? 아... 생각하기 싫다.


팔꿈치가 이렇게 심하게 아프자 여러 클럽의 정모가 두려워졌다. 몸이 아프지 않았을 때는 그렇게 기쁘고 기다려졌으며, 그날이 오기까지 왜 그리 시간이 더디 갈까 여기기도 했던 테니스 약속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뇌가 의식적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육체는 조금씩 나이를 먹고 있었고, 격렬한 스포츠를 수행하던 몸의 근육들은 전투력의 정점을 찍고 서서히 노화하고 있었다.


신은 갑작스러운 변화를 감당하지 못할 나에게 시간을 두고 여러 가지 시그널을 보내 주셨다. 지방정부가 주관하는 지역 체육대회의 계주에 참가해 이십 대 선수들과 겨루다가 허벅지 근육이 터졌고, 딸아이의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학부모 계주 대표로 나갔다가 코너를 돌면서 넘어졌고 오랜만에 피를 흘렸다. 장시간 운동을 하고 나면 회복은 더뎠고, 어깨와 허리, 발목과 손목이 아프고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감기에 걸리면 기침이 심해졌고 나을 때까지 더 오랜 시일이 걸렸다. 뼈는 더 이상 유연하지 않았고, 스트레칭이 아프게 느껴졌다. 먼 거리를 보다 가까운 물체를 볼 때 초점을 맞출 때까지 간극이 생겼고, 해가 진 후의 운전이 침침한 눈으로 인해 더 어려워졌다.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시간은 줄어들고, 자주 목 상태가 안 좋아졌다. 목이 칼칼하고 간질거리며 가래와 같은 게 낀 느낌이 잘 가시지 않게 되었다. 테니스를 치며 자주 쓰는 어깨 근육과 팔목과 손목, 허리와 무릎, 발뒤꿈치와 발바닥이 수시로 아픈 날이 왔다.


그러나 아주 서글픈 건 아니다. 세상엔 이보다 더 심한 경우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걸 안다. 어쩌면 나도 오늘 오후부터 혹은 내일 아침 눈을 뜰 때부터 더 심한 처지가 될지 모른다. 그건 두려운 일이지만, 걱정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가고 나의 육체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이 만큼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과정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내 몸의 변화가 나에게 조금 더 진한 측은지심을 낳게 한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가능하지 않겠지만, 괜찮다면 내 나이 또래의 벗들과 비슷한 정도로 늙어갔으면 좋겠다.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그게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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