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삶
[강, 바람, 산과 별]
나는 헤아릴 수 없는 오래전부터
구불구불
언덕 아래 바위를 감싸 돌아
나무 이끼 가재와 물고기들
어루만지며
제 알아서 흘렀다네
그래, 나도
기억할 수 없는 세월
마음이 닿는 대로
너울너울
제멋대로 여행하다가
산마루에 앉아 땀을 식히고
풀꽃 만나 이야기 나누곤 했었지
끝 모를 이야기일 줄로만 알았어
나는 땅과 하늘이 생길 때부터
여기 이 자리에 앉아서
그래, 강물이
은빛 손 흔들며 달려가고,
바람이 쉬다 가다
구름 만나 눈물 흘릴 때마다
어깨를 다독여 주었지
비가 되어 강을 채운 눈물을
달님이 수줍게 사위어 가는,
노루 조롱이 다람쥐
멧돼지 식구들이 잠든 밤엔
별들이 목격한 태고의
신비한 신화를
반짝반짝 듣곤 했지
이제 별들은 더 이상
말을 걸지 않는다네
하늘이 지치면 바람이 아프고
산이 아프면 강이 병들고
종다리 날지 않고 버들치가 떠나면
별들은 더 이상
말을 걸지 않는데
사람에게 허파를 찔린 산은
숨을 쉬지 못하고
아파도 한 소리 지르질 않네
죽어가는 강들이 비명 지를 때에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으므로
전국적인 산불이 가져다준 결과는 처참했다. 역대 최고 수준의 산불은 부주의한 인간들의 무지와 함께 우리가 얼마나 재해에 허약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지를 낱낱이 보여주었다. 며칠 전의 많지 않은 비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이렇게나마 마무리를 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얼마나 애를 썼을까? 산불진화에 혼신을 다하신 진화대원 모든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안타깝게 희생되신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급격한 기후변화는 대형 산불 등 자연재해의 주요 원인으로 꾸준히 지목되어 왔었다. 발화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기온상승으로 인해 건조해진 거대 삼림은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몇 년 사이의 대형 재난들은 북미, 남미, 호주대륙과 아시아까지 강타하며, 지구별 어느 지역도 안전지대라고 말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 별이 어디 인간만의 것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문명은 지구 생명체 모두의 삶터인 자연환경의 균형을 너무도 함부로 깨뜨려 가고 있다. 빙하와 만년설의 해동으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브라질 등에서 자행되고 있는 국가주도적 삼림의 파괴와 무관하지 않다. 후대에 대물림할 누적 해양 플라스틱의 양을 과학저널『네이처』는 2040년까지 무려 6억 톤으로 예상하고 있는 지경이지만 이 소비방식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합의된 시스템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비영리 환경단체인 Earth.Org는 가장 큰 환경문제 중의 하나로 부실한 통치(Poor Governance)를 꼽았다.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제기가 오히려 대사기극이라고 규정하는 어떤 정치집단이 대표적인 사례가 되겠지만, 현재 자행되고 있는 자연파괴는 비단 한 개인, 한 국가 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인류는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걸까?
대략 25만 년 호모 사피엔스의 시간 가운데 최근 3백 년 이내의 기간은 눈 깜짝할 시간에 불과했다. 그보다도 짧은 최근 몇십 년 동안에 인류의 비약적인 발전의 이면에서 지구환경은 참혹할 정도의 오염되고 파괴되었다. 자연의 자체정화능력 임계치를 훌쩍 초과해 버린 환경파괴 진행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탐욕적인 소비시스템은 더욱 가속 페달을 밟고 있으니, 지구환경에 있어서 인류가 매우 위험한 존재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버렸다. 소위 '6차 멸종기'는 단순히 경고성 시나리오가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1만 년 전으로 추정하는 문명 이전 수렵채집 시절의 인류는 자연과 하나였다고 학계는 신뢰할만한 고증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곳곳에 수십 년 전까지도 수렵채집의 전통방식으로 살아왔던 원시부족인들의 생생한 삶의 증거가 있었다. 그들은 하늘과 별과 새와 나무들과 공존의 대화를 나누며 살아갔을 것이다. 여기 아메리카 원주민의 목소리가 남아있다.
"우리가 어떻게 공기를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판단 말인가?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햇살 속에 반짝이는 소나무들, 모래사장, 검은 숲에 걸려 있는 안개, 눈길 닿는 모든 곳, 잉잉대는 꿀벌 한 마리까지도 우리의 기억과 가슴속에서는 모두가 신성한 것들이다.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다"
- 시애틀 추장의 연설 중에서 -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류시화 엮음) -
이 책에서 류시화 시인이 수집한 육성에 따르면 그들은 생계유지를 위한 만큼 만 사냥을 했고, 땅을 '어머니 대지'라 부르며 함부로 파헤치지 않았다고 한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모여 앉아, 향후 7대손까지를 고려하여 신중한 판단을 내렸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영혼들은 결국 유럽에서 건너온 침략자들에게 하늘과 대지와 목숨을 빼앗겼다. 그리고 어머니의 젖이 흐르던 땅은 탐욕의 콘크리트로 덮여 버렸다.
3월 말인데 눈이 내린다. 눈 내리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지만 비극을 겪고 난 후에 내리는 눈은 왠지 처연해 보인다. 문득 갑작스러운 꽃샘추위에 벌들이 걱정된다. 내가 인간 아닌 생명들에 대한 엄청난 수준의 자애심을 지니고 있어서가 아니다. 벌이 멸종되면 인간이 존재하기 힘든 연쇄적인 일들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벌들과 꽃들이 잘 이겨내주길 바란다. 뭇 생명들이 우리의 수호신임을 돌아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