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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Feb 03. 2021

부모님께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선물했다

부모님도 귀여운 이모티콘을 좋아한다는 사실

30대 초반의 다소 무뚝뚝한 성향으로  나는 의외로 병맛 멘트들과 이미지들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기분이 안 좋을 때면 '카카오 이모티콘 샵'에 들어가 각종 이모티콘들을 보며 혼자 웃음을 터트리곤 한다. 이미 저세상인 것 같은 몸동작들과 표정들을 보고 있자니, 기상천외한 작품들을 개발해낸 수많은 작가분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이모티콘을 활용함으로써,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메신저 대화창 분위기를 유하게 만들 수도 있고, 뻘쭘할 수 있는 상황을 재치 있게 넘기도록 도움을 주기에, 이 가상 속 요물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유료 이모티콘의 현재 기준 판매가는 2,500원으로 (이벤트 등에 따라 할인이 적용되기도 한다.) 커피 한잔 값을 아낀다면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이모티콘 2종류를 구매할 수 있다.

이렇게 차곡차곡 모은, 내 선택을 받은 이모티콘들은 대부분 똘기가 충만한 것들이 많다 보니 아주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활용하게 된다.( 똘기 이모티콘을 모든 이들에게 당당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나의 좁쌀만 한 베짱이 아쉽다.)

 

부모님과 채팅을 할 때방정스이모티콘을 주로 사용한다.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할 땐 절대 표현할 수 없는 발랄함을 이모티콘에 가득 담아 발송하곤 한다. 반면, 부모님은 카카오톡에서 기본으로 제공되는 이모티콘을 간혹 이용하거나, '~^^' , '♡' 등의 자판으로 표현할 수 있는 클래식한 이모티콘을 주로 활용하곤 하셨다.



[평소 부모님과의 카톡 대화방] 부모님은 '물결' 표현과 '손가락 모양 이모티콘'을 주로 활용하신다



무료로 제공되는 이모티콘과 더불어 손가락 모양 아이콘 또한 충분한 매력이 있지만, 새로운 이모티콘이 주는 소소한 기쁨을 부모님도 느끼길 원했다.  


하지만 나의 짧은 생각으로 60대 초반인 아빠 그리고 50대 후반인 엄마는 이모티콘을 구매해서 사용하는 것에 관심이 없을 것이라며 지레짐작하곤 했다. (글이기에 아버지, 어머니로 표기하려 했으나, 자연스러운 서술을 위해 평소 내가 칭하는 호칭으로 기재하고자 한다.)




어느 날, 부모님 그리고 남편과 식사를 할 때였다. 엄마는 대화창에서 내가 발송했던 몸부림치는 흰색의 캐릭터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런 건 따로 살 수 있는 거니? 내 카톡에는 없던데."


나는 카톡창 하단의 이모티콘 샵으로 이동하는 아이콘을 눌러 여러 이모티콘을 보여드렸다. 가끔씩 유료 이모티콘을 구매하며 기분을 전환하기도 하고, 지인들과 선물을 주고받기도 한다는 정보 또한 동시에 전달했다.


엄마는 "요즘은 재밌는 게 많네." 라며 웃음을 지으셨고 나는 "하나 사줄까?" 라며 대답했다.


엄마는 내게 가장 많이 하는 대사 중 하나인 "괜찮아, 너 예쁜 거 많이 써." 라며 대답했고, 난 '부모님은 이런 거에 관심 없으시겠지'라고 생각하며 무심하게 잊어버렸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난 후, 부모님께 이모티콘을 선물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사소한 행동을 계기가 있어 했다는 게 부끄럽지만.)


나의 외할머니는 췌장암으로 투병 중인 상태 병원에 자주 입원하여 항암치료를 받고 계신다. 할머니를 보살필 수 있는 자식은 엄마가 유일하기에 매일같이 병원에 모시고 가고, 입원 시 보호자의 자격으로 함께 병원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시곤 한다.


최근 코로나 상황으로 병원 내 방역이 강화되면서, 환자 외 보호자들에게도 입원 기간 동안 ' 잠시의 외출' 조차 허용되지 않아, 엄마는 모든 일정을 제쳐두고 병원 안에서 할머니와 함께 약 1주일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답답한 병실 안에서 힘들게 치료를 받고 있을 할머니를 생각하면 걱정이 되고, 동시에 갈수록 쇠약해져 가며 통증이 심하다며 호소하는 '엄마의 엄마'를 바라보는, '나의 엄마'의 심정 또한 말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울 걸 알기에 더 속상하다.


괴로운 마음으로 할머니를 지켜보고 있을 엄마와, 잠시지만 다섯 명으로 북적이던 집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 쓸쓸함을 느낄 수 있을 아빠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한 '작은 선물' 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이모티콘'을 떠올렸다. (참고로 나는 결혼으로 출가한 상태이며, 동생 1, 2는 해외 거주 및 군생활을 하는 상황이다.)


현 직장 동료이자 전 직장에서 알게 된 언니인 Y양은 본인의 아버지께 이모티콘을 선물을 했는데 이모티콘을 수도 없이 활용하고 계신다며 이모티콘 선물을 강력 추천했다.


'카카오 이모티콘 샵'에 들어가 부모님이 좋아하실 만한 이모티콘을 검색했다. 이모티콘 분류는 연령대별로도 나뉘어 있었는데 연령대별 분류가 아닌, 귀여움 가득한 이모티콘 위주로 검토했다. 신중한 고민 (?) 끝에 엄마에게는 계란 반숙 캐릭터인 '김반숙' 이모티콘을, 아빠에게는 '파란색 말랑이' 이모티콘을 발송했다.


부모님이 이모티콘을 잘 다운로드하실 수 있으려나 잠시 걱정하던 순간,  새로운 이모티콘이 담긴 메시지가 도착했다.


새로운 유료 이모티콘은 즉각적으로 그리고 적극 활용되었다


부모님은 선물 받은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능숙하게 다운로드하고, 재빠르게 활용하셨다.


부모님보다 신문물에 조금 더, 자주 노출되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 기반으로 한 나의 걱정은 오만이었다.




이번 해 환갑을 맞이 하게 된 아빠는 유튜브를 통해 요즘 세대들의 생각과 전체적인 트렌드를 파악하고자 하며, 태블릿 PC 메모장에 귀여운 사람과 해와 강이 드리운 풍경을 끄적끄적 그려 놓곤 하신다. 50대 후반인 엄마 또한 색깔이 예쁜 립스틱을 선물 받으면 소녀같이 웃기도 하고, 요즘 젊은이들의 긍정적인 변화를 받아들이고 응원하려 노력한다.


새로운 '이모티콘'을 사용하며 즐거워하는, 감수성이 가득한, 어찌 보면 부모님 또한 나와 다르지 않은 여린 존재이겠으나, '부모'라는 역할 안에서 많은 감정을 누르고 강한 모습만을 보이려 했다는 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의 감수성이 나와 다를 것이라 생각한 나 자신이 얄궂다.


앞으로도 귀엽거나, 잔망스러운  이모티콘들을  종종 선물해드리려 한다. (이제 그만 좀 보내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이미지 출처: 카카오톡 이모티콘 샵 ]


 참고로 저는 '카카오 이모티콘 샵'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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