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식목일, 서재에 앉아 전하는 인사
거리는 벚꽃이 개화했고 마당에는 반가운 봄비가 내리는 날이다. 23년 심었던 수선화 구근은 24년에는 꽃을 못 봤지만 올해는 마당 곳곳 노란빛으로 인사 중이다. 작년에 보지 못한 감나무 열매도 올해는 볼 수 있으려나? 같은 생각을 하며 슬기와 서희는 내리는 봄비를 보는 여유로운 주말이다.
새바람주택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작년 한 해 사계절을 보낸 이야기까지 마치며 어느덧 긴 글의 마무리를 할 때가 되었다.
얼마 전 초대한 지인 세명과 함께 할 점심식사를 준비 중이다. 당근찜과 샐러드를 준비하고 피자와 아보카도를 구웠다. 곧이어 방문한 지인들과 가벼운 화이트와인 한잔도 곁들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평일 점심, 가지각색의 이유로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날 대화의 화두는 각자 앞으로 거처였다. 다양한 이유로 군산에 모여 같은 일을 했던 세 사람은 한 단계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는 상태였다. 군산이 고향인 사람은 군산에 남기로 결정했다. 서울에 청년주택이 있다는 한 명은 군산에서의 룸메와 작별하며 서울로 돌아간다고 했다. 전주가 고향인 한 명은 또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를 계획하며 잠시 전주에 머문다고 했다.
나의 방, 나의 집은 돌아갈 곳이기도 하며 어디에, 어떻게 살 것인지 늘 꿈꾸게 한다. 집에 누워 ‘집에 가고 싶다’라고 중얼거리는 누군가도 있을 수 있겠고. 그랬을 때 나의 새바람주택을 생각하면 4화에 그려놨던 다이어그램이 떠오른다. 나에게 집이란 나를 알아볼 수 있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으며 집에 쌓인 시간을 보는 것이다. 또 앞으로도 집에 쌓여가는 일상들과 소소한 물건들 그리고 함께 사는 이의 시간을 지켜보는 일일 것이다.
앞선 세 사람과 같이 나의 방, 나의 집을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새바람주택이 작은 <무엇>이 되길 바라며 긴 여정 중인 나와 모두에게 응원의 말을 전하고 싶다.
2층 테라스의 당근에서 나눔 받은 등나무 의자에 앉아있다. 겨우내 마당, 외부 활동은 생각도 안 하다가 햇빛도 바람도 제법 따뜻하길래 오랜만에 테라스를 청소하고 여유를 즐겨보는 중이다. 잠시 멍 때리며 둘러보니 지난해 설치한 가림발에 곰팡이가 슬어있는 게 보인다. 사실 교체하려고 사둔 게 있지만 미뤄두었는데 청소한 김에 가림발을 바꿔둔다. 다시 의자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시선 끝에 정체불명의 파란 조각들이 눈에 들어온다. 뭔가 햇빛에 부식된 건가 싶어 둘러보니 지붕 파란 기와에서 페인트 조각들이 떨어진 거 같다.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싶어 일단 기록해 두고 지저분하니 물청소를 한다. 약간 마음이 심란해져 의자에 기대 본다. 이번엔 테라스 천장 구석에 말벌집이 작게 생긴 걸 발견한다. 지금은 벌들이 없는 거 같은데, 서희 말론 예비로 집을 지어놓고 나중에 필요하면 다시 올 거란다. 저것도 치워야겠네. 할 일 리스트에 추가. 커피 한 모금을 더 마셔본다.
나에게 집이란 끊임없이 고치고 돌보는 일을 기꺼워하며 나의 취향과 애정을 담아가는 공간이다. 집을 깨끗하게 잘 고쳐서 들어가면 끝이 아니라 그때부터 다시 시작인.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에 따라 다만 사계절과 감응하며 때와 철에 맞게 채워나가는 삶인 것이다. 나와 서희, 새바람주택의 이야기가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재료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이 이야기는 집을 고친 이야기이자 나와 너 그리고 집, 이 세 개체가 맞춰나가는 과정이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두 개의 우주가 만나는 거라 했던가. 그 각각의 배경과 특징을 가진 우주가 꼭 어떤 특정한 조건이 맞아야만 같이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슬기와 서희가 많이 받았던 질문에는 집이나 인테리어 비용은 어떻게 분담했나요. 계약서는 쓰셨나요. 공과금이나 생활비는 어떻게 관리하시나요 같은 금전적인 부분, 그리고 혹여 둘의 사이가 틀어질 것에 대한 대비 등에 대한 것이 많았다. 처음에는 어떻게 명쾌하게 답할 수 있을까, 우리도 저런 것들을 생각해봐야 할까 했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으레 같이 살고 있는 가족, 부부들만 봐도 정말 다양한 형태로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 둘은 그 어떤 것보다 가치관이 맞았던 것이 이후의 선택과 이 삶을 꾸리게 했다. 그 외의 부분들은 신뢰와 배려로 서로에게 무리 없게 해 나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러니 너무 많은 고민보다는 일단 해보시라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