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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 Oct 25. 2024

엄마 어릴 때 혼자 둬서 미안해

돌 틈에 피어나 짓밟혀도 당신은 아름다운 꽃이다 09

나의 어린 시절은 처참히 짓밟히고 빼앗긴 채로 끝나 버렸다. 매일 끔찍한 폭력 속에서 나는 철저하게 혼자였고, 살아남아 어른이 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기적이다.


지나버린 시간은 돌이킬 수 없으니 너무 억울하고 안타깝다. 내게 위로가 되는 것은 그저 가끔 상상 속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러 가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들에게서 사과를 받고 싶었다. 이제 그들도 노년의 나이가 되었으니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기대했다. 그저 미안하다는 한마디만 해준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 잊고 남은 삶 동안 어울려 살면서 효도도 할 생각이었다.


12년 전 그날까지만 해도 나는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야 한다고 동화처럼 생각했다. 사람이라면 노년이 되었을 때 젊은 시절의 잘못을 뉘우치고 후회가 남지 않도록 속죄하고 사과하며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어 할 거라는 환상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죽기 전에 나에게 사과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런데 역시나 그들은 사람의 수준이 아니었다. 사과를 요구하는 나에게 학대당했다는 증거가 있냐면서 내 아이들 앞에서 쌍욕을 퍼부었다. 

 

아찔했다.

아직도 내가 어리고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가. 그들이 너무 악한 것인가.

용서받을 가치가 없는 그들에게 용서를 구할 기회를 주려 한 것도 나의 상처를 위한 집착이었는지 모른다.


절망하며 혼자 울고 있는 나에게 그 당시 네 살이었던 셋째가 다가와서 꼭 안아주며 말했다.

“엄마 어릴 때 혼자 둬서 미안해.”


네 살 아기가 보기에도 그들이 나를 함부로 대하는 모습에서 내가 어릴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있었나 보다.


셋째가 그 말을 해주며 작은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고 안아줬을 때, 그때까지도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어린 시절의 상처가 봄볕에 닿은 눈처럼 사르르 녹아서 사라졌다. 혼자 울고 있는 어린 내 모습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햇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순간 드디어 모든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엄마라는 존재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신은 나에게 엄마를 주는 것을 잊어버린 대신 아이들을 보내준 것 같다. 모든 것이 정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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