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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이야기

여기에 오길 참 잘했다

by 꽃님

희망이는 앞을 보지 못한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희망이에겐 다른 사람에겐 없는 아주 특별한 능력이 있다. 한번 기억한 냄새는 절대 잊지 않는 것이다. 희망의 세상은 온통 검정이지만 희망이가 맡은 냄새들은 온갖 색으로 변해 희망이의 마음속에 멋진 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어느 날 놀이터에서 희망이 와 보라가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천사처럼 예쁜 여자가 다가와 보라에게 말했다.

"예쁜 아이야, 길을 잃었는데 병원이 어디에 있는지 아니?"

보라는 해맑게 웃으며

"병원은 저기 길 건너에 있어요."

라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길 건너 병원을 가리켰다.

"그래? 정말 병원이 있네? 그런 줄도 모르고 한참을 찿아다녔네."

하더니 주머니에서 사탕을 하나 꺼내 보라에게 주었다.


"예쁜 아이야, 병원 가르쳐줘서 정말 고마워. 그래서 말인데 언니가 맛있는 아이스크림 사 줄게. 같이 갈래?"

"정말요? 저 아이스크림 진짜 좋아해요!"

보라는 여자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때 여자를 따라가려는 보라의 치맛자락을 희망이가 잡으며

"보라야! 안 돼! 가지 마! 이상한 냄새가 나. 이건 틀림없어! 나쁜 사람 냄새야!"

"뭐야, 넌? 기분 나쁘게."

여자는 보라의 치맛자락을 꼭 붙잡고 있는 희망이의 손을 억지로 떼어 놓았다.

그 순간, 희망이는 마구마구 소리를 지르며 보라의 다리를 끌어 안았다. 희망이의 괴성에 어른들과 아이들이 뛰어나왔다. 여자는 몹시 당황하여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어느 날 마을에 낯선 사내가 나타나 밤마다 몰래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사내는 어린아이와 여자나 노인만 사는 집 벽에 이상한 표시를 하고 다녔다. 마을 사람들은 사내를 붙잡았다.

"당신, 도둑이지? 왜 여자와 아이, 노인만 사는 집에 표시를 하고 다녔지? 나중에 몰래 들어가서 도둑질하려고 했던 거 아냐?"

"뭐요? 당신들이 봤어요? 내가 도둑질하는 걸 말이요. 왜 애먼 사람 잡고 그럽니까?"

험상궂게 생긴 사내는 우락부락한 팔뚝을 보이며 화를 냈다.

"당신 의심스러우니 경찰서 갑시다!"

"내가 왜 경찰서에 갑니까? 못 갑니다!"



희망이가 그 사내 옆으로 다가와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사내에게서 은은하고 포근한 라벤더 향이 났다. 뿐만 아니라 달달한 초콜릿 향도 나고 있었다.

"아니에요. 이 아저씬 도둑이 아니에요."

마을 사람들은 희망이의 말을 듣고 모두 깜짝 놀랐다.

"이 아저씨는 좋은 냄새가 나요. 분명 좋은 사람이에요. 넓은 들판에 보랏빛 파도처럼 피어 있는 라벤더 같아요."

희망이 말 한마디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사내를 더 이상 붙잡아 두지 않았다.



며칠 후 사내가 표시해 두었던 집들 문 앞에 손편지와 함께 커다란 상자가 놓였다.


여기에 오길 참 잘했다

그리고 상자 안에는 쌀과 황금 네 잎 클로버가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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