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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를 옮겨 쓸 때

글쓰기 실제 1

by Hyun Hyun Mar 26. 2025

강의 잘하는 교수님 따로 있고 논문 잘 쓰는 교수님 따로 있다는 이야기 들어봤니? 이거 검증된 사실인지 잘 모르겠다. 아빠 생각엔 강의 잘하는 교수님이 글도 잘 써. 글 잘 쓰는 교수님들이 강의도 잘하시고. 교수님들이야 '논리력'이 기준이 될 텐데 그렇지 않을까? 말과 글이 차별적이지 않고 '톤 앤 무드'도 닮았다고도 생각하거든. 

  '쓰기 전 단계' 그러니까 저번 시간에 'what-to-say'라고 했던 단계 말이야. 그 단계에서는 말이 필요해. 말을 잘하고 많이 해야 해. 혼자서라도 머릿속에서 대화를 하라고. 소설가 이승우 선생님 작품 중에 '사랑의 생애'라는 소설이 있어. 이 선생님이 사랑에 관한 소설을 쓰신 게 아빠는 놀라웠어. 다른 글들은 철학적 사유가 가득하거든. 여하튼. 책 서두에 선생님이 쓰신 '작가의 말'을 읽어보면 이런 대목이 있어.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미묘하고 당황스러운 현상들을 탐사하는 데 할애된 이 소설은 떠오르는 대로 순간의 단상을 적어둔 여러 개의 내 메모들에서 탄생했다. 메모들은 여러 권의 몰스킨 수첩을 거쳐 스마트폰의 메모장으로 옮겨 왔다. 소설에 붙은 소제목들은 메모장에 있는 것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 이승우, 사랑의 생애(작가의 말) 


'순간의 단상' 메모가 몰스킨 수첩에서 스마트폰 메모장으로 옮겨진 것 까지가 '쓰기 전 단계'가 된 거지. 아빠는 여기에서 두 가지 사항을 눈여겨봤어. 먼저 메모야. '소설에 붙은 소제목들은 메모장에 있는 것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잖아. 그 정도로 '쓸거리'가 잘 마련되었어. 


사랑할 자격

누군가의 귀

파스타라는 기호

사랑한다는 말

라이벌

연인의 역할

생존을 위한 사랑

질투-의심

결투와 질투

두려움과 연민

사랑이 대체 뭐예요?

앎과 함

- 이승우, 사랑의 생애(서른여섯 개의 소제목 중 열두 개)


어때? 소제목들의 일부인데도 쓸거리가 느껴져? 

  쓸거리가 더 좋은 쓸거리로 정제하는 단계도 살며시 '작가의 말'에 들어있어. '옮겨 왔다'는 대목이야. 옮겨 와서 또 소제목으로 옮겼어. 옮기면서 사유의 교정이 발생해. 너희들 리포터 쓸 때도 말이야. 줄글 수기로 쫙 써보고 (간단하게라도) 컴퓨터에서 쓰게 되면 옮기면서 글이 정리가 돼. 초점이 잘 잡힌 글로 변화하는 거지. 


테스트로 뭐 하나 같이 써볼까? 오늘은 쓰기 전 작업까지만. 어때? 

  간단한 편지글 하나 써볼까 해. 


아빠의 요즘 생각들을 글로 써보자. 메모는 많아, 물론 아빠 머릿속에 메모한 거지만. 엄마가 요 몇 주 동안 집에 없잖아. '엄마의 부재'를 통해서 아빠가 깨달은 것들이 좀 많았어. 자 아빠의 메모를 봐. (다음 수업엔 편지 형식으로 아예 글로 쓰자고.) 


엄마의 부재 - 아이들을 내가 챙겨야겠어.

식사 준비 - 재료부터 사 와야 하네.

설거지 - 한 번만 쓴 컵도 설거지통으로 들어간다.

배달음식 - 배달음식 용기도 설거지해야 해.

빨래 - 걷어야 널 수 있어.

청소 - 등교 후 아이들 방에 가보고 기겁했다.

주부 - 밤낮이 없는 극한직업이다.

집안일 - 이런 건 귀찮지만 그래도 할 수 있어.

아내의 부재 - 극단적인 외로움.

견뎌낼 수 있을까?

아내는 언제 돌아오나?

돌아와도 집안일만큼은 내가 해야지.


너희들 엄마가 실제로 부재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알게 되었어. 이런 내용을 글로 쓰게 되면 '더 잘' 알게 되겠지. 

  아, '사랑의 생애'라는 소설 꼭 읽어봐. 하나의 문체가 장편의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되고 있어. 무엇보다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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