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눈이 내렸다. 오랜만에 내리는 11월의 눈이라고 주위에서 떠들어댔다. 새벽에 일어나서 창밖을 내다본 다음부터 입술가에 브람스의 인터메조 한 토막이 떠나질 않았다. 저녁이 되고 눈은 정강이 아래까지 쌓였다. 도심의 교통은 혼잡스러울만했지만 브람스의 멜로디처럼 화려하게 보였을 뿐 브람스의 생각처럼 고요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타인과의 다른 기억을 문제 삼고 있는 순간들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여전히 혼재될 수도 없는 기억, 그러니까 그 무(無) 기억 속에서 시름에 싸였다. 수희의 기억은 언제까지고 나와는 다른 세상에 있을 것이었다. 나는 무엇인가를 찾아 1994년으로 돌아가보기로 했다. 그 해, 대학 2학년 8월 16일 입대를 했다. 94학번(이라는) 수희를 내가 만났다면 1학기였을 것이다. 브람스의 첫 번째 인터메조는 고조되다 말고 마무리되었다.
그 해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학교에 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나는 학교에 관심이 없었다. 학교 선생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다. 시인 이성복이 불문과의 교수였다는 것도 복학 후에 알았고, 나의 시험 답안지를 보고 비평을 권해주었던 문예창작과의 소설가 교수도 복학 후에 부임했다. 나는 학교의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었다. 대체 학교는 무엇을 하는 것, 또는 곳인지 관심이 가지도 않았지만 관심을 둘 이유도 없었다. 동아리방들이 있는 학생회관을 몇 번 지날 때마다 철 지난 고전음악 레퍼토리에 비트를 제대로 견주지 못하는 밴드부의 드럼 소리가 들렸는데 나는 잘 견디지를 못했다. 그 해쯤엔 그나마 박자감각이 있던 사물놀이패의 징이며 북이며 장구를 치던 운동권 선배들도 자취를 감추어가던 시기였다. 세상엔 도무지 멋진 리듬이란 게 들리지 않았다. 학교는 더했으면 더했다. 나는 방학에는 막일판 철거, 새 학년 새 학기에는 공장건물에 새시를 다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간조나 월급을 받으면 그 돈으로 레코드를 사러 다녔다. 내가 단골인 레코드 가게에는 시를 쓰는 장정일 씨가 시커먼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찬 바람에 출몰하기도 했다. 시인은 한 번, 레코드가게 주인과 내가 서로 레코드를 맞바꾸는 거래에 끼어들어 훈수를 두었다. 그렇게 그 해의 추운 날은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