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미래를 향해 달리기만 하는 현재
일하다 보면 아직 나는 마음의 준비도 안됐는데 '급하게' 던져지는 일들이 많다. 일본에서 일할 땐 미리 알려주는 일들이 많아서 그렇게 급한 일이 많지 않았는데 한국에서는 '발등에 불 떨어지는' 일의 빈도가 높다. 뭐든 '빠름'을 추구하는 나라. 계획과는 다른 요구사항도 많은 나라.
빠름을 추구하고 그걸 또 해내서 '한강의 기적'을 일궜고 성공했다는 말도 일리는 있다. 급하다고 하니까 하기는 하지만 전혀 즐겁지가 않다. 쫓기는 기분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를 갈아서 어떤 성과를 이뤄내는 것이 기쁘지 않다. 그걸 내가 해냈다는 기쁨으로 일을 하면 즐거울 수는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까지 기쁘지 않다. 그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몇 없다는 칭찬을 듣는다고 해서 기쁘지 않다.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려고 일을 하는 게 아니다. 나는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 돈을 벌고 있고, 내 시간을 더 가지는 것이 목표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쫓기듯이 사는 게 싫다.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만 하느라 친구들이랑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고, 대학교 때는 스펙 쌓는다고 여러 활동을 하는 바람에 쉬지 않고 달리기만 했다. 그렇게 달렸는데도 취업이 되지 않아 속상했고, 겨우 들어간 회사에서는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일했다. 삶이 바빠서 가족과 밥한끼 같이 먹는 게 참 힘들었다.
일본에서 일하는 3년 동안 처음으로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져봤다. 아주 급한 일이 아니면 개인적으로 연락이 오지도 않았다. 직장 동료 핸드폰 번호도 모르고 점심은 각자 먹었다. 내가 일한 곳은 도시도 아니어서 사람에 치이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 좋았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었다는 것을.
한국에서는 갑자기 예고도 없이 일을 탁 던지는 경우가 많다.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라는 게 있는데, 갑자기 해야 하는 일이 주어지면 중요도가 올라가면서 쥐어짜듯이 뭔가를 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원래 하려고 했던 일을 할 에너지가 거의 없는 상태가 돼버린다. 하지만 마감일이 같기 때문에 야근을 하든 엄청난 힘을 발휘하든 둘 중 하나는 해야한다. 이 과정이 고등학교 때 오롯이 대학입시만을 위해서 내 건강도 포기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두 차단했던 과정과 유사하다. 걸레 짤 때 물 한 방울도 안 나올 때까지 짜는 것처럼 내 에너지를 모조리 가져가 버리는 느낌이다. 나도 한국인이고 하던 가락(?)이 있으니 '하라'면 하긴 하지만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다 타버리는 느낌이 들어서 기쁘긴커녕 우울해지기만 한다.
나는 일에 내 에너지를 많이 써도 80%만 쓰고 싶고 20%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것으로 남겨두고 싶다. 100% 다 에너지를 소진하는 형식으로 사는 게 기쁘지가 않다. 스마트폰도 매일 배터리가 다 닳을 때까지 쓰는 것보다 몇 퍼센트 남았을 때 충전을 시키는 게 더 오래 쓸 수 있다. '갑자기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많은 경우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지치기 때문에, 기존 업무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져서 업무 효율도 떨어질 텐데, 늘 이렇게 쥐어짜듯이 일해야 하나 싶다.
매번 쥐어짜듯이 달리기만 하니 정작 내 삶과 내 가족과 내 건강은 돌보지도 못한 채, 일로만 채워지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기본은 해야겠지만 이게 기계와 경쟁하는 시대의 인간의 삶인가 싶기도 하고, 슬프고 쓸쓸해지기만 한다. 시간의 주인이 되고싶다. 시간에 끌려다니는 사람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