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스타트업의 김이영 대표는 창업 5년 만에 1,000억 원이 넘는 투자 유치와 주식시장 상장에 성공했어요. 충분한 자금을 확보한 그는 곧바로 미국 시장 진출을 선언했죠. 표면적인 명분은 '글로벌 최대 시장 진출을 통한 기업 가치 상승'이었어요. 그러나 충분한 시장 조사나 진입 전략 없이 추진된 이 결정은 뚜렷한 성과 없이 회사의 시간과 자원을 소모하게 만들었어요. 이후 내부 감사에서 김 대표가 오랫동안 미국 시민권 취득을 준비해 온 사실이 드러났어요. 그는 미국 진출이 회사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주장했지만, 개인적 이익을 위해 회사를 이용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는 없었어요. 결국 그는 대표 자리에서 해임되었어요.
인간인 우리는 인지적 편향(Cognitive Bias)을 갖고 있어요. 지난 50년간 심리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우리는 세상을 개인적인 경험·감정·기대·신념 등에 따라 왜곡된 방식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어요. 즉, 완전히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은 불가능하다는 뜻이에요. 하버드경영대학 존 하몬드(John S. Hammond) 교수는 의사결정자가 경계해야 할 8가지 인지적 편향*을 지적했어요. [1] 대표적인 예가 확증 편향(Confirming-Evidence Bias)이에요. 자신이 이미 믿고 있거나, 믿고 싶은 생각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게 되는 경향을 의미해요. 앞선 사례에서 김이영 대표는 미국 진출과 관련해 내외부에서 제기되는 현실적 어려움에 대한 정보를 무시하는 행동으로 이러한 경향이 나타났어요.
* 확증 편향 (Confirming-Evidence Bias), 기준점 편향 (Anchoring Bias), 현상 유지 편향 (Status-Quo Bias), 매몰 비용 편향 (Sunk-Cost Bias), 프레이밍 편향 (Framing Bias), 과잉 확신 편향 (Overconfidence Bias), 신중함 편향 (Prudence Bias), 가용성 편향 (Recallability Bias)
의사결정자의 인지적 편향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정해진 절차에 따르는 것이에요. 일반적인 의사결정 절차는 문제 정의, 대안 탐색, 비교 평가, 결정과 실행 등 4단계로 구성되어요. [2] 이러한 절차는 객관적인 정보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현실적 제약을 넘어 창의적인 대안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줘요. 그리고 사전에 설정된 항목과 기준에 따라 다양한 대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도록 돕기도 하고요. 이러한 과정을 거쳐 도출된 최선의 대안을 선택하면 되고요.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절차에 따라 의사결정을 진행하는 그룹은 평균 20% 이상 더 높은 성과를 올릴 수 있었어요. [3]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업에서 절차에 따라 의사결정을 진행하는 조직은 2% 정도로 많지 않았어요. 현업에서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시간 부족, 그리고 의사결정자의 과도한 자신감 등을 이유로 절차를 따르지 않고 있어요.
많은 조직에서 의사결정 절차를 번거롭거나, 불필요하게 느끼는 이유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인간의 생존 본능은 직관적인 선택에 가깝게 진화되어 왔어요. 직관적인 선택은 빠르고 편리해요. 그렇지만 앞서 살펴본 대로 인지적 편향 등 영향으로 오류의 가능성도 높아요. 이를 절차를 통해 보완할 수 있지만 시간이 걸려요. 그렇지만 절차를 따르느라 소모되는 시간은 훈련을 통해 단축할 수 있어요. 올림픽 양궁 선수는 과녁 정중앙에 화살을 쏘기 위해, 활시위를 놓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통제해요. 자세, 호흡, 시선, 심지어 손끝의 힘까지도요. 그리고 정확히 과녁을 조준하기까지 채 20초가 걸리지 않아요. 이는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이뤄낸 성과라고 할 수 있어요. 의사결정 절차도 이와 다르지 않아요. 앞선 연구에서도 절차에 따라 선택을 내리는 조직의 90%는 그렇지 않은 조직보다 의사결정 속도가 더 빠른 것으로 나타났어요. 훈련된 조직에서는 의사결정의 정확도와 속도 측면에서 모두 우위를 가질 수 있어요.
회사의 중요한 결정을 특정 개인, 리더에게 맡겨두지 마세요. 특히 김이영 대표 같이 조직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사람일수록, 절차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리는 일이 중요해요. 작은 규모 조직에서도 하루에 수 십, 수 백 번의 크고 작은 결정이 내려져요. 이를 고려하면 조직 차원에서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는 일이 현명한 리더 한 명을 채용하기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고 생각해요. 크고 작은 의사결정이 모여 부서의 성과를 만들어 내고, 궁극적으로는 회사 전체의 성과에도 기여하게 되어요. 성과를 만드는 조직을 만들고 싶나요? 그렇다면 특정 구성원에게 역할과 책임을 부여하기 전에,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고 훈련에 시간을 할애해 보세요. 인사가 만사라면, 절차는 무기예요.
[1] Hammon et al. (1998 September). The Hidden Traps in Decision Making. Harvard Business Review.
[2] Hammond, J. S., Keeney, R. L., & Raiffa, H. (2015). Smart choices: A practical guide to making better decisions. Harvard Business Review Press.
[3] Erik Larson. (2016 March). A Checklist for Making Faster, Better Decisions. Harvard Business 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