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함은 효율적인 조직 운영의 핵심이에요. 여기서 공정함은 공통 원칙에 따라 조직 구성원들을 차별 없이 대하는 운영 방식을 의미해요. 공정한 조직일수록 구성원은 그 원칙을 신뢰하고 따르려 해요. 많은 구성원이 같은 원칙을 따라 업무를 한다면 그만큼 조직 전체의 효율성도 올라갈 수 있어요.
직장 생활 10년 동안 공정함을 갖춘 리더는 딱 한 명 만났어요. 큰 행운이었죠. 그는 고위 임원이었지만 회사 원칙을 엄격하게 따랐어요. 당시 회사는 ‘성장 마인드셋’을 중요한 원칙으로 삼았어요. 사람의 능력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 학습을 통해 발전할 수 있다는 철학을 담고 있는 원칙이었어요. 이를 위해서는 실패를 배움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게 중요했어요. 대부분 리더는 승진과 성과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기 어려워했어요. 하지만 그는 달랐어요. 실패한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그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보다는 자신의 판단에서 미흡했던 점을 드러냈어요. 개인적인 불이익보다는 회사의 원칙을 중시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어요.
덕분에 직원들은 회사의 원칙을 더 신뢰하게 되었고, 업무에서도 자연스럽게 그 원칙을 따르려 노력할 수 있었어요. 게다가 동료의 실수는 너그럽게 받아들여도, 원칙을 어기는 행동에는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직원들 스스로 조직 문화를 바로잡아갔어요.
아쉽게도 제가 만난 대부분의 리더는 공정하지 않았어요. 겉으로는 공통의 원칙과 조직 성과를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행동을 자주 보였어요. 예를 들어, 구성원들에게는 비용 절감을 요구하면서도 자신은 이전과 다름없이 회사 비용을 사용한다거나, 조직 성과에 중요한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승진 경쟁자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추진하지 않는다거나, 구성원이 만든 성과를 마치 자신의 성과처럼 상사에 보고하는 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네요.
문제는 이처럼 자기 이익을 우선하는 리더가 중요한 의사결정자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즉 조직 전체에 최선인 선택이 아니라 리더 개인에게 최선인 선택이 우선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예요. 이는 조직의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는 결과로 나타나게 되고요.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서는 이러한 비효율이 조직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요인이 되기도 해요.
제가 경험한 대기업의 중장기 전략 프로젝트 사례가 대표적이에요. 전문경영인 CEO의 임기는 대부분 2~3년이에요. 그러다보니 장기 성과보다는 단기 성과를 내는 프로젝트에 더 신경쓸 수밖에 없어요. 임기 내에 성과를 내야 계약 연장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이러한 구조적 한계로 인해 1년에도 수 차례 중장기 전략에 대한 검토를 했지만 제대로 된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었어요. 뛰어난 인재, 충분한 여유 자금 그리고 혁신을 만들어 낼 기술력까지 모두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못했던 것이죠. 시간이 흘러 혁신 트렌드가 도래하고 나서야 "우리는 왜 미리 준비를 하지 못했냐"라며 성토하기를 반복하기만 할 뿐이었어요.
자기 이익을 우선하는 리더를 비난할 필요는 없어요. 이를 특정한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인간의 심리 자체가 공동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에 더 집중하도록 진화해 왔다고 이해하는 편이 적절해요. 이를 뒷받침하는 심리학 연구를 몇 편 소개할게요.
첫 번째는 자신과 타인의 공정성 인식 차이를 살펴본 연구예요.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연구팀은 학생들을 모아 자신과 타인이 얼마나 공정한지를 평가하도록 했어요. 10점 척도로 완전 공정하다면 0점, 완전 불공정하면 10점으로 점수를 매겼죠. 그 결과 자기 자신에 대한 평균 점수는 5.31점인 반면, 타인에 대한 평균 점수는 6.75점으로 나타났어요. 이는 자신이 완전히 공정한 사람은 아니지만, 타인에 비해서는 공정하다고 인식한다는 점이 확연히 드러난 결과였어요. [1]
두 번째는 성과 기여도에 대한 자기 인식을 살펴본 연구예요. 미국 하버드대학의 연구팀은 MBA 학생을 대상으로 그룹 성과에 대한 자신의 기여도를 묻는 설문조사를 수행했어요. 이론적으로는 모든 구성원들이 응답한 합은 100%이 되어야 했죠. 그렇지만 실제 응답에서는 평균적인 합계가 139%로 나왔어요. 응답자들은 자신이 실제 기여한 것보다 더 많은 성과를 창출했다고 믿고 있었어요. 자신의 기여도는 과대평가한 반면 다른 구성원들의 기여도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였고요. [2]
세 번째는 전문직 종사자들의 무의식적 자기 이익 추구 경향에 대한 연구예요. 의사들은 환자가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이 더 좋다는 걸 알면서도 최대한 자기 병원에서 치료받도록 권유하는 경향을 보였어요. 또한 변호사들은 설령 고객에게는 소송이 유리하더라도 소송을 진행하기보다는 합의를 유도하는 경향을 보였고요. 소송은 준비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변호사 입장에서 불확실성도 더 크기 때문이었죠. 마찬가지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주가가 30-50% 폭락하는 상황에서도 고객을 붙들어 두기 위해서 'Buy' 혹은 'Hold' 의견을 내는 경향이 있었어요. 이는 자신의 인센티브와도 연결되기 때문이었어요. [3]
위 결과를 리더에게도 투영해 볼 수 있어요. 리더는 자신이 공정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성과를 과대평가하고 (혹은 다른 사람의 성과를 과소평가하고), 자기 이익 앞에서는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일 가능성이 높아요. 즉, 애초에 공정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이죠. 리더가 자기 이익을 우선하는 태도는 나쁜 의도를 가졌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무의식의 영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어요.
리더의 공정함을 개인의 성품에만 기댈 수는 없어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자기 이익에 기울기 마련이니까요. 따라서 공정한 조직을 만들고자 한다면 조직 차원의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 것이 중요해요. 미국 하버드대학의 마자린 바나지(Mahzarin Banaji) 교수와 맥스 베이저먼(Max H. Bazerman) 교수의 논문을 참고해서 아래와 같은 세 가지 방법을 소개할게요. [4]
데이터는 단순한 참고 자료가 아니라 판단의 시야를 넓혀주는 장치예요. 앞서 소개한 그룹 성과 기여도 실험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었어요. 자신의 기여도를 답하기에 앞서 다른 사람의 기여도를 먼저 생각하게 했더니, 응답자들은 자신의 기여도를 더 낮춰서 말했어요. 타인의 기여도라는 정보가 들어오면서 판단의 기준이 ‘나 중심’에서 ‘전체 맥락’으로 확장된 덕분이었어요. 이처럼 데이터는 리더가 직관이나 개인적 선호보다 근거에 기반한 판단을 하도록 도와줘요.
이 원리는 실제 제도 설계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어요. 예산이나 인력처럼 중요한 자원을 배분할 때에는 "왜 이 결정이 조직 전체에 유리한가"를 수치와 근거로 설명하도록 요구해야 해요. 승진이나 보상 평가도 마찬가지죠. ‘내가 보기에는’이라는 인상을 기준으로 삼기보다, 성과와 기여도를 기록하고 수치화하는 것이 공정한 판단을 유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에요.
공정한 판단을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을 의도적으로 끌어들이는 장치가 필요해요. 리더는 자신이 공정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혼자 판단하지 않고, 업무 현장을 잘 아는 실무자나 이해관계가 다른 부서의 의견을 함께 듣는 절차를 만들어야 해요.
특정 사안에 대해 찬성과 반대 입장을 모두 제시하도록 하는 방식도 효과적이에요. 아마존의 반대 메모(Disagree and Commit) 문화가 좋은 사례예요. 아마존에서는 구성원이 반대 의견을 문서로 체계적으로 제출하도록 장려해요. 그렇지만 논의가 충분히 진행된 후 최종 결정에는 모두가 동의하고 따라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어요. 이렇게 하면 비판적인 의견을 조직에서 배제하지 않는 동시에 리더의 편견을 줄이는 안전장치로 활용할 수 있어요. 다양한 의견이 테이블 위에 올라오면 개별 의견의 힘은 약해지지만, 논의 자체는 오히려 더 객관적이고 균형감 있게 발전하게 되죠.
판단의 공정성을 유지하려면 각 이해관계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전에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이때 존 롤스의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 개념을 적용하면 유용해요. 무지의 장막이란, 자신이 특정 이해관계자나 집단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가정하고 결정을 내리는 사고 실험이에요. 이렇게 하면 리더는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는 편향에서 벗어나, 조직과 구성원에게 공정한 선택을 하도록 유도될 수 있어요.
이를 제도적 장치로 마련할 수도 있어요. “누가 혜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는가”를 공개적으로 검토하는 절차를 포함하면 리더가 자신의 이익에만 집중하기 어려워져요. 앞선 사례에서 대기업 계열사 CEO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임기 내에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누가 혜택을 보고, 누가 부담을 지는지를 명확히 드러낼 수 있다면 CEO는 단기적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조직 전체의 장기적 이익을 고려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요. 그렇게 함으로써 조직 차원에서 더 공정한 판단이라는 점을 강조할 수 있으니까요.
[1] Pronin, E., Lin, D. Y., & Ross, L. (2002). The bias blind spot: Perceptions of bias in self versus other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28(3), 369–381. https://doi.org/10.1177/0146167202286008
[2] Caruso, E. M., Epley, N., & Bazerman, M. H. (2006). The costs and benefits of undoing egocentric responsibility assessments in group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1(5), 857–871. https://doi.org/10.1037/0022-3514.91.5.857
[3] Banaji, M. R., Bazerman, M. H., & Chugh, D. (2003, December). How (Un)ethical are you? Harvard Business Review. https://hbr.org/2003/12/how-unethical-are-you
[4] Banaji, M. R., Bazerman, M. H., & Chugh, D. (2003, December). How (Un)ethical are you? Harvard Business Review. https://hbr.org/2003/12/how-unethical-are-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