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짧은 삼부작 소설

by 캡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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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이미 수천 권의 책을

섭렵했다고 말하는 사람을 온라인상에서 봤다.


이상하게 잘난 척한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나는 매일 잠을 잔다" 같이 건조한 사실처럼 들릴뿐.


그가 쓰는 글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지식의 넓이와 깊이에 감탄했다.

그의 말이 사실일 수밖에 없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채널을 삭제하고 사라졌다.


[2부]


내가 그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몇 가지 안 됐다.


1. 90년대생

2. 남자

3. 서울 거주

4. 인간관계가 서툴다

5. 압도적으로 똑똑하다


그를 탐정처럼 찾아 나설 것은 아니었지만

그를 우연히라도 마주치게 된다면 알아차리고 싶었다.


당시에 나는 다양한 모임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있었기에 희박하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아주 드물게 위 다섯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듯한 사람을

만나게 될 때면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나누곤 했다.

그럴 때마다 5번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 느끼게 되었다.

압도적이지 않았다. 아쉽게도.


호기심에 의한 갈증으로 목마른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그가 다시 나타났다.


약 2년 만이었다.


[3부]


나보다 그를 더 적극적으로 찾아 헤매던 사람이

새로운 아이디로 개설한 그의 채널을 발견한 것이다.


알고리즘이라 불리는 운명의 여신이

나에게 이 복음을 전해주었다.


글을 읽자마자 확신했다. 그였다. 그여야만 했다.

태양계에 두 개의 태양이 뜰 수 없지 않겠는가.


그의 근황은 극단적으로 좋고 나빴다.

코인과 사업의 큰 성공으로 자본주의를 졸업한 게 좋은 점.

연인과의 파혼 그리고 수술이 필요한 건강상태는 나쁜 점.


다시 돌아온 그는 세상 모든 것에 해탈한 듯 보였다.

아니 어쩌면 그가 쌓아온 지식을 하나씩 허물고 있는지도.


그의 채널에 방문자가 늘자 그는 서서히 조용해졌다.

그리고 또다시 채널을 삭제하고 사라졌다.


나는 그를 다시 찾아 나서지 않았다.

그에 대한 호기심도 없어졌다.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족]


처음엔 생각 없이 썼다. 온라인상에서 봤던 너무나도 똑똑했던, 똑똑하다는 말로 충분히 표현이 안 되는 누군가가 갑자기 떠올라서 그냥 썼다. 길게 쓸 생각도 없었다. 지금 쓰고 있는 브랜딩 관련 책에 집중하기 위해서 머릿속 잡생각을 청소하고 싶었다. 그래서 배설하듯 스레드에 올린 것뿐이다.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좋아요는 금세 100을 넘었고, 후속 이야기를 써달라는 댓글이 수두룩 달리기 시작했다. 돈을 받고 글을 쓰는 입장이 아니라 무시해도 큰 상관은 없었지만, 새로운 글쓰기를 해보라는 우주의 신호처럼 느껴져서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실화를 다소 각색하여 삼부작 소설로 써보기로 했다. 해야되는 일이 빼곡하게 있었기에 이틀에 걸쳐 짬날 때 빠르게 썼다.


대중에게 공개하는 나의 첫 소설이자,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짧은 삼부작 소설은 렇게 탄생했다.


<마케팅을 잘 모르지만, 마케팅을 잘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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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said alam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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