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니 인스타그램 피드를 넘기다가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최근에 인생 맛집이라고 지인들에게 추천했던 ‘남영동경주’의 사장님이었다. 그런데 피드를 올린 계정은 사장님의 계정이 아닌 다른 계정이었다. 넷플릭스였다. 넷플릭스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흑백요리사>의 티저 영상이었고, 사장님은 참가자로 출연하는 것 같았다. 몇 년 전에 해지한 뒤로 오랫동안 접속하지 않던 넷플릭스에 들어가서 1화를 재생했고, 단숨에 4화까지 몰아보게 되었다. 개인적인 관심을 떠나, 프로그램의 기획과 완성도가 상당히 훌륭했다.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흑백요리사2>가 제작된다면 누가 나가면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음식에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최근 방문한 음식점 중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가격대에서 기억에 남는 세 곳을 꼽아보려고 한다. 세 분의 흑수저를 추천하고자 한다.
제주도에서 가장 유명한 김밥집은 단연 ‘오는정김밥’이다. 오는정김밥은 나의 부모님도 젊었을 때 찾았던 전통의 김밥집이다. 그러나 나에게 제주도 최고, 아니 대한민국 최고의 김밥집을 꼽으라면 협재해수욕장 근처에 위치한 ‘제주머슴네’를 자신 있게 추천할 것 같다.
평소 김밥을 그리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기회가 되면 꼭 다시 찾게 되는 맛집이다. 전복내장으로 비빈 밥에 불향이 감도는 흑돼지를 넣어 김과 계란으로 감싼 이곳만의 김밥은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특히 깻잎과 무를 곁들여 먹으면 다양한 맛의 조합이 일품이다. 투박한 공간과 터프해 보이는 사장님과는 반대로, 화려한 맛의 대비가 인상적인 김밥집이다.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흑수저 중 다수가 남영역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이었다. 동네 주민으로서 괜히 어깨가 으쓱했는데, 그만큼 남영역 근처에는 숨은 맛집이 많다. 그중에서도 동네 주민과 이곳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맛집을 꼽자면 ‘문배동육칼’을 추천하고 싶다.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오랜 시간 영업함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언제나 손님들로 붐빈다. 음식도 주문하자마자 바로 나오고, 손님들도 금방 먹고 나가는 빠른 회전율에도 불구하고 늘 만석이다. 요즘 유행하는 힙한 음식점과는 달리, 단골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나도 스무 번 이상 방문한 곳이다.
메뉴는 육칼, 육개장, 사골칼국수 단 세 가지로 단순하다. 이 중 육칼과 육개장은 공기밥이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의 차이만 있어, 실제로는 두 가지 메뉴로 볼 수 있다. 이곳의 대표 메뉴인 육칼은 육개장에 칼국수를 넣어 먹는 음식이다. 자극적인 듯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고, 건강한 한 끼 같으면서도 마치 새벽에 몰래 끓여 먹는 라면 같은 느낌도 든다. 여러모로 뻔하면서도 뻔하지 않은 오묘한 맛이다. 무협지에서는 기존의 규율을 잘 따르는 ‘정파’와 자유로운 ‘사파’가 있다. 이곳은 칼국수의 정통에서 벗어난 사파의 느낌이다. 세 글자로 정리하면, ‘맛있다!’
나는 국밥을 좋아한다. 부산에 국밥 투어를 다녀온 적도 있고, 서울의 유명한 국밥집도 웬만큼 다 가본 것 같다. 그중 최고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광화문국밥’을 추천한다. 6년 연속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된, 이미 유명한 맛집이다.
이곳을 추천하는 이유는 누구나 호불호 없이 좋아할 만한 국밥집이기 때문이다. 돼지국밥이 비려서 싫다는 사람들과도 방문했지만, 모두 이곳만은 괜찮다고 했다. 그만큼 비린 맛이 없는 뽀얀 국물이 돋보이는 돼지국밥이다. 고기도 훌륭하고, 깍두기, 오징어젓갈, 고추, 마늘, 쌈장 등 밑반찬도 모두 훌륭하다. 국밥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국밥을 잘 안 먹는 사람에게도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최고의 국밥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