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 년 전 한 철학자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병약했던 그는 군 복무 중 낙마 사고로 크게 다치면서 건강이 극도로 나빠졌다. 시력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두통이 심해 글쓰기를 하기조차 힘든 상태였다. 그때 그에게 한 줄기 빛처럼 다가온 것이 있었으니 바로 ‘타자기’였다.
타자기에 익숙해지자 그는 눈을 감고도 글을 쓸 수 있었다. 시력 악화와 극심한 두통 속에서도 글을 이어갈 수 있는 도구를 손에 넣은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단지 도구만 바뀌었을 뿐인데도 그의 글쓰기는 묘하게 달라졌다. 펜으로 쓸 때보다 문장이 축약되고 간결해졌던 것이다. 이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한 것은 그의 주변 사람들이었다. 그 철학자가 누구일까? 바로 짧고 강렬한 아포리즘으로 유명한 프리드리히 니체다. 실제로 니체는 세계 최초의 상업용 타자기 중 하나였던 ‘말로(Malling-Hansen) 타자기’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오늘의 영감은 이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영감은 어떤 도구로 표출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나 역시 글을 쓰며 이를 크게 체감했다.
지인과 함께 쓴 독립출판물 <비행독서> 집필 당시의 일이다. 그녀는 종이에 펜으로 한 문장 한 문장을 눌러 쓰고, 마음에 드는 문장이 완성되면 컴퓨터로 옮겨 적었다. 90년대 이전의 소설가들을 연상케 하는 방식이었다. 반면 나는 컴퓨터 자판 위에서 생각의 속도와 거의 동시에 글을 쏟아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불과 일주일 만에 내 분량을 채웠고, 이후 그녀의 원고가 완성될 때까지 퇴고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글을 다듬어갔다.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글에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듯한 깊이가 있었고, 나의 글은 종이 위를 질주하는 듯한 속도감이 있다는 평을 들었다. 서로 다른 도구가 사고의 방향도 달리 표출한 셈이다.
조금 더 흥미로운 점은 컴퓨터로 글을 쓸 때조차 어떤 포맷 위에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마케팅 뷰자데>를 쓸 때는 가벼운 아이패드를 들고 다니며 브런치에 원고를 저장하는 방식으로 썼다. 애플 계열은 MS 워드 호환성이 떨어지다 보니 브런치를 부득이하게 활용했는데, 그 환경에서는 유한한 종이 위에 글을 쓰는 듯한 압박감이 있어 문장이 상당히 압축되었다. 100m 단거리까지는 아니지만 1000m 달리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마케팅 뷰자데>는 후속작들에 비해 호흡이 짧고, 책 전체가 하나의 서사로 이어지기보다 챕터마다 독립적 완결성을 갖춘 형태로 완성되었다.
반면 <작은 기업을 위한 브랜딩 법칙 ZERO>와 <회사 밖 나를 위한 브랜딩 법칙 NAME>은 모두 MS 워드로 집필했다. 흡사 조선시대 보부상처럼 아이패드보다 훨씬 무거운 노트북을 어깨에 메고 다니며 카페와 사무실, 집에서 글을 썼다. MS 워드는 마치 무한한 종이 위에 글을 쓰는 느낌을 줬다. 그래서 브런치처럼 챕터 단위로 끊기보다는 쓸 수 있을 때까지 이어 나가며 글을 적었고, 결과적으로 책 전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흐름 속에서 완결성을 띠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엄지로 쓰는 글, 스마트폰이다. 이동 중 스레드에 글을 올릴 때는 두 엄지를 사용한다. 화면은 작고 입력은 느리다 보니 자연스레 글이 매우 간단해진다. 표현의 자유도는 줄어들고, 직관적이고 축약적인 문장들만 남는다. 언어의 경제성이 극대화되면서 ‘사족’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이렇게 핸드폰으로 글을 쓰다 다시 컴퓨터로 옮겨 글을 쓰면, 훨씬 가벼워진 나의 문장과 마주하게 된다.
이처럼 내 생각은 어떤 도구로 표출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혹은 가장 편한 도구를 찾는 것이 영감을 세상과 나누는 데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도구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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