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생각이 많아지면 짐을 챙겨서 산으로 떠났다. 도시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품고 있지만 좋아하는 만큼 미워하는 것들 역시 가득했다. 미움인지 싫증인지 무기력인지 모를 감정이 가슴이 가득 차오르면 산이 생각났다. 갑갑한 마음을 털어내기 위해 나는 주말마다 산을 올랐다.
먼저 간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다져진 흙길은 단단했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을까. 앞서 올라간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품고 산에 왔을까. 다들 저마다의 사연과 이유를 짊어지고 묵묵히 산을 올랐을 것이다.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뗄 때마다 삶의 무게를 느꼈을 것이다.
한마디 말도 없이 혼자 올라가는 산이지만 올라갈수록 마음이 편해졌다. 나보다 먼저 이곳을 찾은 이들의 발걸음을 보며 산을 오르다 보면 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구석구석 비탈길 사이로 남은 또렷한 족적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힘이 났다. 혼자 올라가고 있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일상으로부터 멀어진다. 정상을 향해 올라갈수록 복잡한 마음과 번잡한 생각은 멀리 사라진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정상에서 나를 돌아본다. 마음을 달래주는 말이나 위로가 담긴 이야기 하나 없는 조용한 곳이지만 산은 힘을 준다. 올라가면서 배우고 내려오면서 깨닫는다. 산은 삶의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