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산은 사람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도봉산

by 김태민

도시의 낮과 밤이 다른 것처럼 산도 밤이 되면 낮의 모습과는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한창 등산에 재미를 느껴 주말마다 산을 찾던 직장인 시절의 일이다. 주말의 산은 어디나 늘 사람이 많았다. 아침 일찍 등산을 시작해도 오르다 보면 등산객들이 금세 늘어났다. 정상에 도착하면 술과 안주를 손에 들고 여기저기 술판을 벌이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그런 번잡함을 피하기 위해 나는 늦은 시간의 한적한 산을 올라가 보기로 결심했다.


땅거미가 산을 덮기 시작한 저녁은 한적했다. 바람과 함께 귓가를 스치는 새소리와 맑은 계곡물소리만 들렸다. 한낮의 등산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산은 조용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얼마나 걸었을까 이상하리만큼 주변이 고요해졌다. 그때 불현듯 혼자라는 편안함이 순식간에 고립되었다는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한걸음 옮길 때마다 밝은 기운은 산너머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해를 집어삼킨 산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차가운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K35718 <도봉산> NFT digitalart 2023

밤의 어둠은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내 그림자를 집어삼킨 밤이 사나운 범처럼 발걸음을 추격하고 있었다. 새들의 노랫소리는 모두 사라지고 상쾌했던 바람소리는 음울한 울음소리처럼 차가웠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뱉어낸 마찰음은 당장 내려가라는 경고처럼 들렸다. 밀려드는 불안함을 이겨내기 위해 나는 빠른 걸음으로 산을 탔다. 산중턱에 도착했을 때 보이는 것은 새까만 어둠뿐이었다. 멀리서 쫓아온 산짐승의 울음소리가 넓은 공터를 배회하고 있었다. 손전등으로 등산로 저 너머를 비춰봤지만 보이는 것은 불빛 뒤로 잠시 물러선 어둠뿐이었다.


나는 정상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돌렸다. 산에서 내려오는 산바람은 내 등을 떠미는 것처럼 느껴졌다. 걸을 때마다 귓가를 때리는 수풀과 낙엽 밟는 소리는 때로는 여러 개로 겹쳐서 들렸다. 밤의 산은 사람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은 어둠 속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혼자서 밤에 산을 올라간 적은 없다. 화려함 속에 약육강식의 정글을 숨긴 도시처럼 산도 다른 얼굴을 갖고 있었다.

keyword
이전 19화올라가면서 배우고 내려오면서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