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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든 Oct 13. 2024

금요일 저녁 헬스장에서 든 감정

[금요일 저녁 헬스장에서 든 감정]

특별한 약속이 없는 금요일 저녁, 숙제를 하듯 헬스장으로 향했다. 금요일 저녁 헬스장은 항상 여유로운 편이다. 한산한 헬스장에서 전세 낸 듯이 마음껏 기구를 쓰는 기분이 쾌적하다.


오늘은 저녁을 간단히 닭가슴살 샐러드로 먹었더니 드디어 자기 관리 루틴이 정상궤도에 올랐다는 생각마저 들어 감격스럽다. (화요일 저녁에 먹었던 곱창 같은 것들은 이미 기억에서 지웠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붐비는 헬스장에서 불편하게 운동하던 친구들은 오늘도 붐비는 도심 어딘가 붐비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돈까지 써가며 근손실을 마주하고 있겠지? 흥, 나는 다르다. 이렇게 완벽하게 한 주를 마무리하고 있는걸?

 

요일마다 헬스장의 인구밀도는 편차가 크다. 월요일이 특히 붐빈다. 우람한 덩치들이 이영차 소리를 내고 후끈후끈 열정이 샘솟으면 부담스러움이 엄습한다. 그럴 때면 나는 잠시 웨이트 존을 피해 러닝 머신으로 향한다. 최소한의 패션 근육을 유지하기 위해 헬스를 하는 내게 월요일의 헬스장은 과분한 온도다. 그러니 한산한 금요일 저녁에 밀린 운동을 하는 것은 제법 만족도가 높은 활동이다.


*


언제부턴가 금요일에 약속을 잘 잡지 않는 것 같다. 회사 동료들 위주로 만나다 보니 금요일은 아무래도 개인적인 약속을 위해 남겨두는 경우가 많다. 막상 주변 사람들에게 금요일에 뭘 하냐고 물어보면 다들 특별한 약속이 없다고 하던데, 회사 주변 술집에는 술 마시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방금 전까지의 의기양양함은 어디 가고, 왜 나는 혼자 썰렁한 헬스장에서 쇠질을 하고 있냐 하는 의문이 든다. 헬스는 다시 하면 되지만 이번주 금요일은 내 인생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말이다. 


에이, 아니다. 금요일이라는 단어에 굳이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여기저기 연락을 돌리면 금방 약속을 잡을 수는 있겠으나 짧은 텐션업 이후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피곤하다. 헬스나 갈걸' 하고 후회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휴대폰 메신저에 혹시 연락이 왔나 확인해 본다. 아무런 메시지도 없다. 금요일 저녁에는 광고문자조차 뜸하다. 광고를 뿌려대는, 누군지 모를 그분들도 헬스장이 아닌 종로, 강남의 어느 술집에서 한주를 마무리하나 보다.


**


샐러드만 먹어서인지 너무 배가 고프다. 샤워를 마치고 나니 나른함이 온몸으로 퍼진다. 집에 가는 길에도 계속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난다. 밀린 넷플릭스를 보면서 맥주에 포테이토칩을 먹고 싶은 욕망이 올라온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다. 지난 수년간 주말 저녁에 나의 식욕과 절제력이 치열하게 싸웠던 경험을 돌이켜본다. 상대전적은 비등비등했던 것 같다. 그저 피곤해서 졸다가 잠든 적도 있고, 허기짐을 참고 주린 배를 부여잡고 잠든 적도 있다. 그런가 하면 겨우겨우 참다가 막판에 역전당해서 12시가 넘은 시간에 치킨을 시키는 완패를 당한 적도 있다.


그런다, 지난 몇 주간은 절제력의 승률이 조금 더 높았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적당히 저녁을 많이 먹어서 야식 생각이 나지 않았거나 간단한 스낵 한두 입으로 식욕을 달랬기 때문에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절제력은 승리를 가져갈 수 있었다. 헬스장에서 재 본 몸무게가 0.3kg 정도 빠졌다는 사실도 떠오른다.


맞다. 금요일 저녁을 샐러드로 마무리하는 것은 몸에는 좋은 일이지만 내 정신적 만족감에 있어서는 너무 과한 것 같다. 오늘은 오래간만에 식욕에 패배하더라도 괜찮은 것 같다는 논리는 확실히 설득력이 있다. 나는 패배를 인정하고 캔맥주를 따고 마른오징어 안주를 꺼낸다. 


헬스장이든 종로 한복판의 힙한 야장에서든 어디서든 한 주의 마무리는 각자 잘하면 되는 것이다. 어느 방식이든 무엇이 더 좋고 나쁨은 없다.



표지 사진 : 사진: UnsplashVictor Frei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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