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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남은 이모의 눈빛

사진 한 장의 메시지

by 치유빛 사빈 작가

어느 날, 안 자던 낮잠을 자던 너와 내가 먼저 눈을 뜬 건 엄마였어. 엄마는 문득 이모가 보고 싶어 지더라. 가끔은 그런 날이 있거든. 그날을 떠올리며 너에게 이모와 엄마가 나눴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줄게.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모와 엄마는 서로 의지하는 자매였단다.

서로 웃고, 울고, 싸우다가도 화해하고, 때로는 서로의 엄마가 되어 주기도 했어.


여니는 자매나 형제가 없으니 그 마음을 잘 모를 수 있겠지만,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언니 두 명이 있다는 건 알 거야. 엄마가 처음 이별하면서 언니들은, 언니 아빠와 살았기에 너에게 보여줄 기회가 없었어. 하지만 비록 만난 적은 없지만, 넌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엄마가 이모 이야기 앞서 꼭 알려주고 싶었단다.


네가 갓 초등학생이 되던 봄날에 슬픈 소식을 기억하고 있을 거야. 2년 전, 이모는 긴 투병 끝에 하늘로 떠났지. 함께 이모의 마지막을 배웅하기도 했어.


엄마와 함께 장례식장 입구에 도착했을 때, 이모 영정 사진을 보고 ‘어떡해, 어떡해’라며 울고 있는 엄마를 너는 가만히 바라봤지. 장례식 안으로 들어가니 국화 꽃향기와 구슬픈 울음소리가 가득했다는 걸 넌 기억할까? 처음 보는 사촌 동생과 뛰어다니며 논다고 장례식장 풍경을 기억하지 못하겠지.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아. 엄마 슬픔을 너의 두 눈으로 볼 수 없어 동생과 놀았는지도 모르지.


어느 날 이모가 영상 통화를 했던 날이 있었어. 너도 이모와 이야기를 나누었잖아. 엄마는 그 순간까지도 이모 눈을 놓치지 않고 바라봤어.


갑자기 말을 못 하게 된 이모는 눈빛으로 많은 걸 전하려 했던 모습이 선명해. 그게 우리의 마지막 인사였어.

또 다른 추억도 있어. 집에 이모가 놀러 와, 함께 밤을 보내던 날을. 이모는 몸이 불편해 거실 소파를 지지대 삼아 잠들었던 모습을. 그리고 우리가 거실로 나오자 “언니야, 여니야”하고 반갑게 부르던 목소리도. 엄마 귀에 아직도 또렷하게 살아 숨 쉬고 있어.


병이 깊어질수록 엄마는 이모를 붙잡으려고 인맥을 동원했어.

이모 병을 잘 아는 병원을 찾아보며, 기적에 의지하고 싶었는지도 몰라. 하지만 이미 이모는 그 길을 평온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엄마는 알고 있었어.


이모를 보내는 날, 너는 스스로 씻던 날로 기억되는구나. 다음날, 엄마를 보며 뛰어오던 너. 너와 함께 이모 영정사진을 보며 얘기 나누었지만, 너는 이모가 떠난 것보다, 엄마와 하루 떨어져 다른 사람과 보낸 일이 아마 더 기억에 남았을 거야.


너와 나는 이모를 보내고 각자 방식으로 슬픔을 떨쳐야 했어. 넌 폐렴으로 고열이 났고, 결국 입원해서야 이모를 보냈지. 일주일간 입원하며 너는 너대로 슬픔을 몸으로 삼키고, 엄마는 아픈 너를 돌보느라 슬퍼할 겨를이 없었어.


너는 퇴원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지개다리’라는 영상을 보는 거였단다. 그렇게 각자의 방식대로 슬픔을 흘려보냈지.



1656150281494.jpg 살아생전 이모와 놀던 너


며칠 전 사진첩을 정리하다 살아생전 이모와 네가 놀던 사진을 발견하고 그날을 회상했지.

내가 잠시 서울 간 사이 이모가 너를 돌본 날, 그때 너와 이모의 추억이 여니 마음 한 페이지에 남겨져 있었으면 해.


엄마가 가장 전하고 싶은 말은 사람은 언제나 곁에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는 거야. 그러니 너무 슬퍼하거나 애잔해하지 말자. 우리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비록 곁에 없을 뿐, 언제나 함께하고 있다고 기억해 주겠니.


죽음은 슬프기도 하지만, 슬픔 뒤에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거란다. 보고 싶으면 사진 한 장을 펼치기도 하고, 고이 간직한 추억 한 페이지를 펼쳐 보면 되는 거야.


지금은 헤어져 슬프지만, 언젠가 우리 모두 무지개다리에서 만날 거야. 그러니 슬픔은 잠시만 하자.


이모는 지금 하늘에서 엄마와 너를 지켜보고 있겠지. 엄마가 힘들 때마다 슬며시 다가와 등을 토닥여주는 위로가, 바로 네 이모의 사랑이란 걸 엄마는 알아.


그러니 이모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고, 우리도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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