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의 신박한 해석에 대하여
“아, 덥다.”
7, 8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무더위.
올해 제겐 유난히 빨리 찾아왔습니다.
아마 4, 5월쯤부터였을 거예요.
짧은 소매를 입으면 괜히 건강을 과시하는 것 같아 민망해지는 그런 계절.
한낮엔 괜찮은데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면 유독 더워지는 거예요.
몸속 어디선가부터 활화산이 분출하는 기분이랄까.
“앞으로 큰일이네, 4월부터 더우면 어쩌자는 거야.”
혀를 끌끌 차며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던 제게, 누가 툭 그러더군요.
“너도 갱년기니?”
남들은 다 겪어도 나는 예외일 줄 알았던 그것.
‘갱년기’라는 단어가 가진 파괴력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그날 이후 이상한 버릇이 생겼거든요.
아침에 눈을 떠 몸이 무겁기라도 하면,
“이거 갱년기 징조인가?”
간혹 물건을 깜빡할 때마다
“설마, 진짜 시작된 거라고?”
몸이 조금만 이상해도
무조건 갱년기 탓으로 돌리는 버릇이 생긴 거죠.
그러다, 결국 크게 낙심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조카의 자전거를 뒤따라가다가, 땅바닥에 어이없게 고꾸라지고 만 겁니다.
마음은 분명 달리고 있는데, 더디게만 움직이는 다리.
은콩이가 탄 자전거가 시야에서 멀어질수록
갱년기란 단어가 머리를 잠식하기 시작한 거죠.
그순간, 정신이 팔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거였어요.
시퍼렇게 멍들고 까진 무릎보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모 많이 아프겠다.”
엉망이 된 제 무릎을 본 은콩이가 자기가 치료를 해주겠다며 구급상자를 들고나왔습니다.
“이모가 할게.”
“아니, 아니. 이모는 눈 꼭 감아. 그래야 안 아파.”
너무 작아서, 손대기도 조심스러웠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이모 무릎에 소독약을 발라주고 밴드를 야무지게 붙여줄 만큼 훌쩍 커버린 은콩이.
그런데 성장하는 건 은콩이 만은 아니었던 거예요.
이 세상에서 은콩이의 시간이 쌓여갈수록
이 세상에서의 제 시간은 사라지고 있었다는 거.
은콩이가 성장하면
그만큼 저는 또 늙어가고 있다는 거.
단순하지만 불가항력적인 섭리를 그간 저는 잊고 살았어요.
“이모, 진짜 갱년기인가 봐.”
“갱년기가 뭐야?”
“음, 나이 든다는 신호 같은 거?”
은콩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 봅니다.
“쉽게 말하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다는 신호?”
유심히 듣던 은콩이가 고개를 세차게 좌우로 젓습니다.
“으으응-. 이모는 할머니 아닌데?”
“이모도 할머니다, 뭐.”
“아니이, 이모는 이모야.”
아이는 이모가 할머니가 된다는 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지금의 특별한 관계가 끝나는 게 싫었던 거죠.
아이들은 관계의 변화를 이별로 받아들이기도 한다죠.
“이모가 할머니가 되는 게 싫어?”
“응, 이모는 이모야.”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어. 은콩이가 내년이면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것처럼.”
은콩이는 여전히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젓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어른이 돼야 이모는 할머니야.”
저는 왜 이 한마디가 그렇게 감동적이었을까요?
“정말?”
“응.”
은콩이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이모는 얼굴에 주름도 없고.”
어, 그거…살쪄서 그래.
“머리카락도 아직 새까맣고.”
뿌염 안 하면 완전 백발인데 이를 어쩌나.
“재미있고.”
여기서 재미가 왜 나와.
“달리기는 좀 못하지만, 배드민턴은 좀 잘 치니까.”
…그래, 네 눈에만 대단해 보이는 거야.
그러니까 이모는 이모야
제 옹색한 변명마저 무해하게 만드는
은콩이의 해맑은 미소.
그 미소를 보면서
저는 한가지 다짐을 하게 됩니다.
‘우리 은콩이가 클 때까지 건강하게 잘 살아야겠다.’
아이가 저와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그 예쁜 믿음에 응답해줘야겠다고요.
다음날 아침
제 몸의 변화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어요.
아침에 몸이 찌뿌둥한 건 전날 무리한 탓일 뿐이고,
자꾸 무언가를 깜빡하는 건
단지 제가 정신 없던 날이었을 뿐이라는 걸.
그리고 해질녘 더위는 그저 날씨 탓이라고요.
어느순간, 저는 갱년기란 말에
신체의 모든 변화를 끼워 맞추려고 하지 않았나 싶어요.
나이 들면서 몸이 변화하는 건 맞지만
모든 불편함이 다 갱년기 때문은 아닐 텐데도 말이죠.
몸의 변화는 받아들이되
그 변화가 나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
갱년기라는 생물학적 변화가 진실일 지언정
변함없이 젊고 활기찬 이모로 살아가는 것.
“늙어가는 건 선택할 수 없지만 어떻게 늙어 갈지는 선택할 수 있다.”
는 니체의 말처럼 말이에요.
갱년기의 한자 ‘更’(갱)은
‘바뀌다’란 의미도 있지만 ‘새로워지다’란 뜻도 있어요.
갱년기의 '갱'은 단순한 퇴화, 노화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해석해야 맞는 거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생물학적 나이가 아닌
은콩이의 시간에 맞춰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언제까지나 젊고 재미있는 이모로 남기 위해서요.
나이듦은 막을 수 없지만,
어떻게 살아갈지는 선택의 문제이니까요.
은콩이가 20년 후의 제 모습을 그려주었어요.
초롱초롱한 눈동자도 마음에 들고
잿빛 긴 머리도 마음에 쏙 드는 거 있죠.
무엇보다 환하게 웃고 있는 표정이 아름다워요.
언제나 밝게 웃는 어른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네요.
그렇다면 은콩이는 어떤 모습일까요?
커리어우먼이 된 은콩이, 멋지죠?
요즘 블랙의 멋짐을 아는 나이가 됐는지
모든 옷을 검정으로 바꾸고 있지 뭐예요.
눈이 맑고 발랄한 은콩이를 꼭 닮았어요
커플 옷을 입고 손을 꼭 잡고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며
함께 걷는 길을 상상해요.
은콩이의 그림처럼, 20년 후에도
우리가 같은 방향을 보며 나란히 걸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성공한 인생도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