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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진영 Jun 02. 2021

인과의 고리는 단순하지 않다.


보건학에 인과추론이라는 과목이 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과목이 하나 생겼을 정도이다. 그런데 또 이게 엄청 어려운게 깊이 들어가면 수리통계적 문제를 맞딱뜨린다. 그냥 데이터 분석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수리적으로 깊이 있게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 말이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는 통계학을 전공하신 김우주 교수님께서 강의중이시다.


여기서 이야기할 주제는 딱딱한 학문적 주제는 아니고, 우리가 인과라는 것에 대해 얼마나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지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보통 A로 인해 B가 발생하면 A가 B의 원인이고 B가 A로 인한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만약에 일례로, A와 B를 둘러싼 C가 있고, 이 C가 A와 B에 모두 영향을 미친다면, 이 C의 역할은 무시되어도 괜찮을까? 이 C가 전통적인 인과추론에서는 confounder 라 불리우는 것이고 보정을 해줘야 A가 B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지만, 이건 수리적인 인과추론 이론이고, 철학적으로 이야기하면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A가 B를 일으키는데에 C가 장판을 깔아주는 역할이 현실세계에선 너무너무 중요하다.  


미국은 2차 대전의 가장 큰 이득을 가져간 승전국이고, 모든 전쟁의 과실과 이후 경제발전의 가장 맛있는 파이를 독차지했다. S&P 500과 다우지수, 나스닥 차트를 50년간 살펴보면 참 멋지다. 이 바닥 위에서 국회의원 아버지 밑에서 착실하게 중학교 때부터 주식을 거래해오고 대학원에 가서 투자의 이론적 바탕까지 다진 워렌버핏 같은 사람이 안 나오는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이 워렌버핏이란 사람을 2차 대전이 막 끝난 필리핀에 데려다 놓았으면 어땠을까. 그래도 워렌버핏이 되었을까. 아닐 것이다. 우리가 환경의 영향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A가 B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A와 B를 모두 둘러싼 C가 A가 B를 일으키게 만든다.


어떤 공장은 위험한 절삭기계를 다루는데 장갑을 하나도 안 끼고 일하고 있었다. 왜 안끼냐고 물어보니 작업속도가 느려진단다. 이 사업장에서 1년에 1명이 평균적으로 손가락이 잘려서 응급실에 온다. 그럼 이 노동자와 기계의 상호작용에 따른 인과가 중요했을까 아니면 이 사업장의 장갑을 안 끼고 일한다는 방침이 중요했을까. 생각이 필요한 문제다. 이건 직장 괴롭힘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개 직장 괴롭힘이 일어나는 사업장은 회사의 보상체계라든가, 사원들이 모여서 일하는 물리적 구조, 작업이 분배되는 방식 등 여러가지 회사의 제도나 물리적 환경 측면에서 갈등의 불씨가 이미 잉태되어 있다.

근데 이 장판이라 불리우는 C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그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기반이 될 정도로 중요하다. 이 장판이 변화하지 않으면 그 위의 개별 주체 A와 B의 상호작용은 변하지 않고 시간이 흘러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결국에 판 자체가 바뀌어야 상호작용의 양상이 바뀌는 것이다.


또 하나 인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인과가 선형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비선형 관계이거나 중개자를 경유한 (당구의 쓰리쿠션 같은) 관계이거나 여러 개의 중개자를 경유하거나, 아니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장판역할을 하는 C가 보이지 않게 숨어있어서 똑같은 일이 해당 판 위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게 만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사업을 하다가 망했는데, 레버리지를 과도하게 쓰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도박을 특히 좋아하는데, 어떤 일이든 베팅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 사람이 두 번째 사업에서 망하고 세 번째 사업에서 망하는 것은 과도한 레버리지를 쓰는 그의 성향이 투영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가족들도 전부 비슷한 성향을 보이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그 사람의 레버리지를 좋아하고 도박을 좋아하는 경향이 그가 어린시절부터 속해온 가정에서 형성된 어떤 경향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이 사람이 어떤 사업을 해서 망하고 그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무언가 눈에 보이는 이유 하나가 지목되긴 하겠지만, 사실 그 사람이 세 번째 사업에서 망한 근본원인은 그 지목된 대상이 아니라 그가 원래부터 레버리지를 좋아하고 과도하게 끌어다 쓰는 그의 성향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는 반대로 공부를 잘하거나 사업적으로 성공하는 케이스에도 해당한다. 신중히 판단하고, 리스크에 대해 과소평가하지 않고, 현명한 가정 환경에서 여러 상황들을 경험하며 자란 사람은 이후의 사업에서 연달아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 원인이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이 형성해 준 긍정적인 성향들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 부분에 관해 인과추론에서 다루는 학술적 논의도 굉장히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의 목적이 그런 것을 다루는 것은 아니기에 여기까지만 쓰려한다. 진정한 인과는 우리가 피상적으로 보는 그런 사물들 너머에 더 높은 차원으로 존재한다. 그 차원을 우리는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다. 그걸 잘 느끼는 사람은 감이 좋고, 너무 좋으면 돗자리를 깔기도 한다. 인과라는 주제는 한 번 깊게 생각해 볼만한 주제다.


블로그 글: 인과의 고리는 단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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