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그릇이 완성되는 데에는 긴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
송아지나 망아지, 새끼 사슴은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뛰어다니고, 성체가 하는 역할과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 아기는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한 발을 떼기 시작하고 (1년), 또 말을 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성인 개체와 비슷한 function을 하는데에 동물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 (거의 17~18년).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일까. 여기에 어떤 자연의 원리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필자는 진화론 전문가가 아니라 정확한 진화론적 관점의 답은 알지 못한다. 다만 의학과 생물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의 뇌는 동물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복잡한 뉴런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연결망의 숫자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고 연산의 속도나 차원, 추상적 연산 가능 여부에서 인간의 뇌는 동물의 뇌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우수하다. 물리적으로 이러한 complicated 된 뉴런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생물학적 논의를 떠나 이 글에서 필자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큰 그릇이 완성되려면 그만큼 긴 물리적 시간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건 생명체의 발달이나, 예술계 거장의 탄생이나, 학술계 대학자의 탄생이나 마찬가지지이다. 애초에 운동선수 같이 사전에 축적해야 할 지식이 적고, 육체로 배워야 하는 활동이 아닌 이상,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긴 투입시간이 그 개체가 어디까지 성숙할 수 있는지 발달할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캐파 (capacity)가 풍부하고, 리스크 관리 역량이 넘치며, 통계학적으로 robust 한 (오류의 가능성이 적어 여러 번 시도해도 비슷한 결과를 내는) function을 보이는 개체를 만들려면, 상당한 지식과 경험, 통찰,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에피소드들로 뇌의 시냅스가 연결되다 못해 범벅이 되어야 가능하다.
이는 사회 system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system의 역할을 강조한 필자의 이전 글들에서, 한 사회의 어떤 시스템이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겪고 그 사회에서 살아남았을수록, 오류의 가능성이 적고 사회가 원하는 기능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낸다고 언급한 바 있다.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반복을 거치고, 그 전까지 구성원 개체들이 축적한 지식과 지혜가 모여야 이런 성공적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계, 학술계의 거장이 탄생하려면 아주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이전까지 축적되어온 지식을 흡수하는 데에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물론 19세기 초나 18세기 초처럼 이전까지 쌓인 지식이 많지 않았을 때에는 상대적으로 빨랐다.) 봉준호 감독도 대학교 시절부터 사회학과를 나오고 책방에서 살았다고 하니 그 때부터 축적된 영화감독으로서의 역량이나 시각은 범인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가끔 봉준호 감독 영화를 보면 기가 막힐 정도로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반면에 천재라고 불리운 어린이들이나 소년소녀들의 이후 인생 항로를 추적해보면, 기대한 것보다 잘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사회에서 원활히 function을 하고, 기존까지 쌓인 관련 지식들을 익히고 배우며, 충분한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경험을 뇌의 뉴런과 시냅스 연결구조에 축적하는데 물리적으로 매우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현재 뇌에 충분할 정도로 시냅스를 연결하고 있다면 조바심 내지 말고 안심하자. 그리고 큰 그릇을 계획하고 있다면 주변의 섣부른 조언이나 그릇된 조언은 흘려 듣자. 큰 그릇은 만들어지는데 물리적으로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이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