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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A Mar 19. 2016

야맹증

어둠에 익숙해지는 능력의 결핍

창 밖에 어둠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면

읽던 책을 덮고 불을 끕니다


눈 먼 밤이 집을 찾아올 수 있도록

자리에 누워 이불을 덮고 가만히 숨죽인 채

뜬 눈으로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어둠은 느린 걸음으로

발끝서부터 차오르는데

빛에 길들여진 어린 눈동자에게

밤은 너무 낯설어

뜬 눈으로 하염없이 지새웁니다    


어느새 밤은 여울져

제 앞을 집어삼키며 파도치는데

남은 길이라곤

풍랑에 젖은 가난한 섬이 되어가는 일    


저 바다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 밤의 끝에는 누가 찾아올까

보이지 않는 것들을 애써 더듬거리며

메마른 두 눈만 끔벅이다가

깜빡 잠이 들고 맙니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어둠은

다시 때가 차면 나를 삼키려 들 텐데

나는 또 지난밤을 영영 잊고 말겠지요    


달콤한 햇빛에 취한 눈망울로

흩어지는 것들을 담아가려 서두르지만

붙잡지 못하고 더듬거리다

오늘도 밤을 집에 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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