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oA Aug 03. 2016

나는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무엇이 옳은 배려인가


주공 아파트단지 정류장

500번 버스에 몸을 실은 남자는 오른다리를 절고 있었다

허리는 통제를 잃고 휘청거리는 온몸을 간신히 붙잡느라

우스꽝스럽게 좌우로 흔들렸다

나는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눈에 띈 것은 남자의 복장

남자는 하늘색 와이셔츠를 입었고 넥타이는 매지 않았다

단추는 제일 윗단추만 가볍게 풀었으며

바지와 벨트는 그 나이대의 차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젊고 세련됐다

앞코가 하얗게 닳은 스니커즈만이

남자를 수도 없이 괴롭혀 온 장애의 정도를 짐작케 했다

나는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남자의 표정

남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남자는 무뎌진 그의 단화만큼이나

사람들의 시선에 충분히 닳고 닳아 있었다

잔 근육이 붙은 남자의 왼손만이

손잡이를 붙잡고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 정도는 거뜬하다는 듯 짐짓 태연한 표정은

지켜보는 사람을 머뭇거리게 하기 충분했다

남자의 와이셔츠 깃은 빳빳하게 서 있었다

나는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삼십분 남짓 흘렀을까

남자와 나는 같은 정류장에서 내렸다    

남자는 젊었고 결코 지는 법을 몰랐다




무엇이 옳은 배려인가.

당신을 이해할 바른 길은 무엇인가.


이전 28화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