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마틴 Jul 08. 2021

이거 프로포즈 아니야, 다시 해

와이프라 쓰고 룸메이트로 읽습니다 - ⑥


2019년 10월 룸메이트와 베트남 하노이를 갔어요

코로나 이전의 마지막 해외여행이었죠.


룸메이트에게는 평범한 여행이었지만

저에게 일생일대의 순간이었죠.


몇 주 전, 종로에서 주문한 결혼반지를

룸메이트 모르게 받아왔거든요.


맞습니다

★프로포즈★를 준비했어요.



원래는 베트남 여행 이후에 찾아야 하는데

금은방 사장님께 비밀 계획을 말씀드렸더니

하이파이브를 외치며 일정을 맞춰주셨죠.


여행은 즐거웠어요.

아침 8시, 생선을 토막 내는 할머니 옆에서

먹은 쌀국수는 맛있었어요.


시간이 흘러 약속의 그날

저녁 7시, 룸메이트를 데리고

호텔 스카이라운지로 향합니다.


하이

아임 레저베이션드...


제 이름을 대니, 예약 없이는

입장 불가능한 테라스 뷰로 안내해줍니다.


호텔 예약을 할 때 룸메이트 몰래

스카이라운지를 예약했거든요.

메일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안녕. 나는 00월 00일에 너희 호텔에서 묵어

괜찮다면 분위기 좋은 테이블을 예약할 수 있을까?

사실 내가 그날 프로포즈를 할 계획이거든


오우! 미스터 00, 너의 계획은 정말 환상적이야

우리가 널 위해서 자리 하나를 만들어 놓을게

부디 너의 프로포즈가 성공하길 희망할게


하노이 야경이 한눈에 보이는 테이블에서

있어 보이는 칵테일 한잔씩을 주문합니다.

난생처음 접하는 맛이네요. 잘못 골랐어요.


이런저런 얘기 하면서, 시원한 바람도

맞으며 구경하다가 슬슬 눈치를 봅니다.

언제가 타이밍일까? 5분을 만지작만지작 거리다


"자기야 잠깐 눈 좀 감아볼래?"

"오 왜 뭐야 뭔데 뭘 준비했어"


오른손에 살며시 반지함을 올려놨습니다.

살랑살랑 거리던 바람도 딱 멈췄어요.

온우주 대자연이 응원하는 것 같았죠.


"자기야 눈 떠봐"

"오 뭐야 반지야? 빨리 왔네"


빨리 왔대요.

그럼요 반지가 빨리 오긴 했죠.

제가 생각했던 상황이 아닙니다.


깜짝 놀랐다가 감동한 표정을 지으며

살짝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면서

제가 무릎을 꿇으면 주변에선 박수를 쳐야 하는데


"이쁘네~ 근데 이게 프로포즈는 아니지?"

"?????"

"전에 프로포즈 이렇게 해달라고 했는데~ 기억 안 나?"


기억 안 나?? 어떤 기억일까?

나얼의 바람기억은 아닐 텐데


"키워드 하나만 알려주시겠어요?"

"의자"


떠올랐습니다.

체어, 의자였죠.

예전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너가 갖고 싶어 하는 브랜드 의자를 사서

거기에 앉혀줄게. 그때 프로포즈를 할게


그렇습니다. 룸메이트는 정말로

 의자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이거 프로포즈 아니야, 다시 해"


2주 후, 서래마을의 가구 편집샵

저희는 명품백 대신 매일 쓸 수 있는

비트라 의자 2개를 구매했어요.


얼마 후 엄청 큰 택배 2개가 도착한 그날

의자에 서로 앉아서 각자 결혼에 대해서

편지를 쓰고 서로 읽어주었습니다.


"그럼 이게.. 프로포즈 된건가?"

"웅!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와이프라 쓰고 룸메이트로 읽습니다> 시리즈


이전 글


0. 프롤로그

1. 이상형 조언해주다가 사귀게 되었습니다.

2. 나중에 우리 거실은 어떻게 꾸밀까?

3. 원룸 계약 끝나면 우리 그냥 합칠까?

4. 상견례에서 결혼 프레젠테이션을 하다.

5. 신랑님~ 혹시 신부님이 외국인이세요?


이전 06화 신랑님~ 혹시 신부님이 외국인이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