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쁘지 않아.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by 다뜨베이더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이 어떠냐?"라는 식의 질문에 항상 "음... 나쁘지 않은데?"라고 말하는 습관이 있었다.

예를 들면, "이 곳 음식 맛이 어때요?"라든지 "이런 티셔츠 디자인은 어떤가요?"라든지 "저 가수는 어떤가요?"라는 식의 질문에 모두 "음... 나쁘지 않은데?"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나는 그 대답이 썩 시원스럽게 느껴지지 않았으므로 다시 한 번 되물었다.


"나쁘지 않다는 것은 그럼 좋다는 뜻인가요?"

"좋다는 것은 아니지. 다만 나쁘지 않다는 것뿐이야."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흐른 뒤에 나는 어떤 술집에 슬그머니 들어갔다가 거기서 하필 어릴 적 친구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 친구와 나는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거의 20년 만에 만나게 된 상황인지라 반가운 척을 할 수밖에 없었다. 20년 만에 만난 친구에게 속마음 그대로 반갑지 않은 내색을 하기엔 좀 무리가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20년 만에 만난 친구에게 "반가웠어. 기회 되면 다음에 보자!"라는 식으로 대충 얼버무리고 헤어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또 피치 못할 상태에 놓였고 결국 그 친구와 함께 불편한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그래... 진짜 오랜만이다. 반갑네... 하는 일은 잘 돼가?"

나의 이 영혼 없는 질문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처음엔 미처 몰랐다. 그 쓸데없는 질문이 의도치 않은 방아쇠가 되어, 친구의 이야기보따리를 터뜨리게 될 줄이야. 그의 입에서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이 구정물처럼 철철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애써 하품을 숨기며, 이따금 한 쪽 다리를 떨면서, 고개를 괜히 끄덕끄덕하기도 하면서, 또 입술 안쪽을 자근자근 씹어가면서 그 험한 시간들을 견디고 또 견뎠다.


약 두 시간쯤 시간이 흘러 마침내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친구가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나에게 물었다.

"아, 참! 너는 요새 어때?"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음... 나쁘지 않아. 나 먼저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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