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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Dec 18. 2019

엄마, 오늘 밤에 집으로 돌아올 거지?

휴직일기(10) 뒤돌아보니 나는 불안을 먹고 자랐네



아빠는 항상 나보고 간이 작다고 말한다
웃긴 것은, 실제 한의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니 장기 중에서 실제로도 간이 제일 작다는 사실
그렇게 타고났기 때문일까, 나는 언제나 잘 놀라고 잘 걱정한다
불안함이 능력이라면 난 아마 천재적인 불안가로 억만장자가 되었을 거다

태어나 처음 불안에 떨었던 건 언제였는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불안의 기억은 아주 또렷하게 기억한다
매일, 똑같이, 아주 오래 계속되었으니까




많은 사람들의 유년시절과 다르게 내 인생에서는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온 적보다 내가 엄마를 데리러 간 적이 더 많을 것이다

매일 늦게 오는 엄마의 귀갓길을 역행해 1초라도 일찍 엄마가 돌아왔음을 확인해야 마음이 놓였으니까



엄마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어릴 적 학교 선생님을 꿈꿨지만 가정환경과 여러 이유로 엄마는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 일이 좋았는지, 어쩌면 그 일밖에 할 수 없었는지는 몰라도 엄마의 직업은 늘 선생님이었다

유치원 선생님, 학습지 선생님.. 엄마는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 애들과 함께했고, 그 탓에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적었다



유치원 선생님 일을 할 때는 다행히도 나도 유치원생이어서 엄마가 일하는 유치원에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유치원생이라 유치원 선생님 일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수업시간에도 엄마가 지척에 있었고, 수업이 끝난 후엔 남은 일을 처리하는 엄마를 기다리며 유치원 구석 볼풀장에서 혼자 놀다 엄마와 함께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내가 초등학생이 된 후엔 엄마는 학습지 선생님을 했다

눈높이도, 구몬도, 윤선생도 아닌 한글방이라는 이름으로 엄마가 사장이고 엄마가 직원인 채로 일했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할 수 있는 한 오래 일했고 할 수 있는 한 일할 때 쓰이는 비용을 줄이려 애썼다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빠르면 9시, 늦으면 11시가 다 되도록 오지 않는 날도 많았다

당시에는 환승 시스템도 없을 때라서 변기물도 모아서 내리던 우리 엄마는 대부분의 거리를 당연하게 걸어다녔다

그러면서도 하루에 최대한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위험한 지름길도 서슴지 않았다



엄마는 이상하리만치 악을 모르는 사람이어서 인적 드문 길에서 위험한 일이 생길 거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걱정을 할 때마다 세상에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로 나를 안심시켰다

엄마 스스로는 실제로 그렇다고 믿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못하는 아이라 매일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나쁜 일을 상상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엄마가 보통 돌아오는 시간이 지나면 나의 걱정은 시작되었다

10분 후엔 엄마가 올 거야, 30분 뒤엔 올 거야, 조금만 더 기다리면 올 거야

대문이 열리는 소리, 계단을 오르는 소리에 마음이 들떴다가도 이윽고 그 발걸음이 이웃집으로 향해버리면 내 마음은 들떴던 만큼 철렁 내려앉았다



걱정을 참지 못할 때는 전화를 했다

하지만 엄마는 전화도 잘 받지 않았다

진동으로 해둔 벨소리를 듣지 못한 건지, 전화요금이 아까워 받지 않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불안한 통화연결음만 듣다 끝나기 일쑤였다

가끔 전화를 받는 날이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그마저도 엄마는 금방 온대놓고 그것보다 매일 늦게 왔지만 말이다



너무나도 불안한 날에는 엄마를 데리러 가야만 했다

엄마의 귀갓길이 항상 일정하진 않았지만 가장 자주 다니는 버스 정류장을 향해 뛰어가야만 좀 안심이 됐다

집 계단을 내려가 대문을 열고, 골목길을 나와 조금 큰길로, 그곳에서 다시 언덕길을 오른 뒤 올라온 만큼 내려가는 길, 그러고 나서도 꽤 오래 차와 사람이 뒤섞여 다니는 거리를 통과해야 나오는 버스정류장으로

그 불안의 여정에서 엄마를 만나는 날은 행운의 날,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엄마의 손을 잡고 룰루랄라 걸어가는 하굣길의 친구들처럼 엄마와 함께 귀가하는 날

그러지 못한 날은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는 사람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 오늘 밤에 돌아오는 거지?

갑자기 내 곁에서 사라져 버리진 않을 거지?

엄마의 대답은 매일 "응. 당연하지."였지만, 그 답을 확인하는 과정이 매일 고통이었다



골목에서 함께 놀던 친구들이 저녁 먹으라는 엄마의 부름에 돌아간 이후부터 시작되는 불안의 시간

동시에, 나를 먹이기 위해서 가르치기 위해서 엄마가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견뎌야 하는 시간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힘들게 해야만 했던 그 시간들

그 시간을 먹고 나는 이만큼 자랐지만 아직도 그 시간에 묶여있는 것 같은 건 왜일까






엄마는 암에 걸리고 나서야 집 안에서 하교하는 나를 맞아주었다

많은 날들을 병원에서 보냈지만, 집에서 나를 맞아주는 날도 있었다


수능이 끝난 뒤, 점심시간 전후로 하교를 하던 2010년의 겨울날

집에 돌아와 엄마랑 함께 호떡을 사서 나눠먹었던 날을 기억한다

엄마는 호떡이 몸에 좋지 않지만 그냥 나랑 함께 먹고 싶다고 했고, 나는 호떡을 포장해와서 엄마와 함께 먹었다

집 근처 한 카센터 앞 노점에서 파는 녹차호떡이었던가

사이좋게 나눠먹고 보일러로 뜨끈해진 방에서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던 그 날

학교 끝나고 집에 오니 엄마가 있어서, 엄마가 오늘 밤엔 돌아오는 건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던 그 날

엄마가 어떻게든 나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어리고 어렸던 그 날



그런 날들을 지나 이제는 꿈에서도 당연하지 않아진 우리 엄마

이젠 차라리 불안의 밤이라도 있으면 좋겠어

적어도 엄마 품 안은 가질 수 있는 거잖아


엄마, 오늘 밤엔 꿈으로라도 나한테 돌아와 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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