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강권하는 사회에 대한 마지막 에세이
이 글은 '왜 이놈의 사회는 나에게 운동을 강요하는가?'와 관련한 마지막 에세이입니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정책개발연구실 한태룡 실장의 고민상담 형식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이 전의 글들은 다음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글: 왜 이놈의 사회는 나에게 운동을 강요하는가? https://brunch.co.kr/@bruncht7ac/61
두 번째 글: 왜 나에게 운동을 강요하는가(2) https://brunch.co.kr/@bruncht7ac/62
사실 나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체육시간이 싫었고, 지금도 무척 솔직히 말해서 필요성을 못 느끼기도 하고, 그렇다고 일상에서 전혀 불편함이 없어요. 건강검진을 하면, 별문제도 없고, 체형관리? 이 정도면 소싯적 정도는 아니지만 보기에도 괜찮지 않나요(내 착각인가)?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하죠. 운동이 중요하지만, 운동을 하지 않는 것도 개인의 자유이고 운동 자체가 성공적 삶의 절대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사회에서 운동이 강조되는 이유는 외모에 대한 지나친 강조와 2000년 이후 무한 경쟁 분위기에서 외모도 스펙이 되어버린 변화와 닿아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이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드리고자 합니다.
숙제 하듯 사는 삶의 고단함
아동을 대상으로 독서지도를 할 때는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칭찬 그 자체가 아니라 칭찬을 하는 포인트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한 녀석에게는 독서량을 칭찬하고, 다른 녀석에서는 책을 읽고 느낀 바에 대해 물어본 후 그 성취를 칭찬했고 그 두 가지 칭찬이 각자에게 효과적으로 먹혔다고 가정해봅시다. 아마 두사람이 독서를 하는 목적이 달라질 것입니다.
전자는 독서량이 목적이 될 것이고요, 후자는 책 속의 지식이 목적이 될 겁니다. 따라서 전자는 자기 수준보다 다소 쉬운 책을 골라서 많이 읽고자 하는 반면, 후자는 다소 힘들지만 어려운 책을 선택하여 그 속의 지식을 얻으려 합니다. 여기서 책은 수단이 되죠. 정리하자면 전자는 숙제하듯 독서를 하는 반면, 후자는 스스로가 책의 주인이 되어 자기주도형 독서를 하게 됩니다. 무엇이 바람직한 건지는 너무도 자명하지요.
‘숙제하듯’ 사는 사람에게는 분명 그 숙제를 내주는 ‘타인’이 존재합니다. 비록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여 숙제를 부과한 경우라도 그런 목표를 설정하게 만든 사회적 압박이 존재하고 있죠. 두 번째 코너에서 말씀드린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사회적 영향력이 운동을 강요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만일 숙제를 하면서 행복하다면 상관없지만, 자신이 주도하지 못하면 그 일은 의무가 되고 누구나 그러하듯 의무는 고단한 법입니다. 1, 2월의 헬스장 고객수가 3월에는 절반으로 줄어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숙제하듯 운동을 강요하는 이들의 논조, 그 문제점
실제로 정부나 체육회 등 공적 영역과 더불어 다수의 체육학자들도 국민들이 운동을 통해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있고, 그의 일환으로 운동의 좋은 점에 대해 많은 예산과 노력을 들여 홍보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이런 운동의 효과가 단순히 신체에만 한정되지 않고, 성장기 학생들의 학습능력 증진 등 정신적 측면, 안정성 및 사회성 등의 정의적 영역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만, 이들의 논조는 ‘운동하면 A가 좋다. 그러니 운동해라’ 식입니다. 당연히 이런 논조는 국민에게 운동을 숙제처럼 받아들이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운동이 마치 만병통치약인 듯 말씀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같은 설득의 방식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운동의 지속성을 비롯한 효과성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헬스장의 경우에서 실증적으로 증명됩니다.
또한 이는 건강한 방식도 아닙니다. 만약 운동을 중도에 포기하거나, 자신이 목표한 바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그 책임은 운동한 당사자에게 돌아갑니다. 그러면 그 개인은 숙제를 다 하지 못한 부담감으로 열등감에 빠지거나, 심하면 몸에 대한 죄의식까지 느끼게 되죠. 그런 실패 경험 이후 다시 운동을 찾게 될까요? 오히려 운동과는 더더욱 멀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개연성이 커집니다. 행복하기 위해 운동을 하려던 것이 오히려 운동경험 덕분에 운동과 멀어지게 되는 거죠.
그럼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운동의 수단성에서 벗어나자
개인적으로 저는 휴가 때 5박 정도 되는 자전거 여행을 합니다. 자전거 여행은 다른 방식의 여행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목적과 수단의 역전입니다.
다른 여행은 여행지가 목적, 거기까지 가는 과정은 수단이 됩니다. 그러나 자전거 여행은 가는 과정이 목적이 됩니다. 그래서인지 그 장소까지 가는 약 20km 정도의 속도에서 저는 매우 행복감을 느낍니다. 아마 다른 여행에서 그 속도로 목적지에 간다면 미쳐버릴 것입니다.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면서 저는 한번도 ‘몇 kg 빼야지’하는 목표를 세운 적이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길을 가면 즐거울거야, 로 시작합니다. 다녀온 후 느껴지는 가벼운 몸과 빠진 체중은 덤입니다.
운동도 그렇다고 봅니다. ‘건강’이나 ‘몸매관리’ 등의 운동 목적은 던져버리세요. ‘운동이 주는 즐거움’에서 시작해야 운동도 오래갑니다. 굳이 헬스장을 찾아 나설 필요도 없습니다. 일상에서 몸을 움직여보고 그 즐거움에 집중해보십시오. 그러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건강’과 ‘몸매’는 저절로 따라옵니다. 만약 안 따라온다면? 뭐 어떻습니까, 운동하면서 즐거움은 느끼셨잖아요?
Exercise, Just for Fun!
어린이들은 한시도 가만있지 못합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혹시 서대문 형무소의 벽관고문(壁官拷問)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벽에 있는 관이란 의미로 옴짝 달싹 할 수 없는 공간에 사람을 감금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고문하는 방식입니다. 움직임의 제한이 고문입니다. 그 반대로 자유롭게 움직이면 참 즐거워요. 게다가 안타깝게도 이런 움직임의 즐거움은 나이가 들거나 다치게 되면 온전히 누릴 수도 없는 시한부의 성격이 강합니다. 하여 할 수 있을 때 이런 즐거움도 누리지 못하면 너무 안타깝지 않습니까?
남과의 비교 없이 오로지 자신에 집중하여, 다른 가치를 모두 버리고 즐거움에만 천착하다보면 그동안 잃어버렸던 움직임에 대한 즐거움을 되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다보면 무거운 걸 들었을 때의 뿌듯함과 일정거리를 달려봤을 때의 상쾌함 모두를 이해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 행복을 여러분께 들려드리고 싶네요.
Exercise, Just for Fun!
이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