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 듣기]
https://www.youtube.com/watch?v=F6byxAU7ex0&t=58s
강변 미루나무처럼
나를 바라만 보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등지고 사는 오후 볕에
종아리부터 귓불까지
하얀 비늘을 벗는 자작나무
가만히 내 쪽을 향해
차츰 다가오는
그런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저녁이 오는 강둑길
새잎 나는 소리로 흘러가는
물길 따라
홀로 먼 길을 나설 때
사람아 그대는
두 손 들어 부서질 듯 불러도
여전히 돌아볼 수 없는
먼 지향에 닿아야 할
약속이 있었고
내가 알 수 없는 곳으로 가야 할
돌이킬 수 없는 언약이
오래도록 있었네
바라만 보다 그만
저무는 강 물결처럼
켜켜이 물빛으로 쌓인 사람아
흐르다 나에게 멈칫
돌무지가 된
침전의 흔적들은
저무는 물소리에
허리 가늘어진 패랭이꽃으로
너를 닮아 피었고
스쳐 간 자국들만 아직 남아
안개비 내리는 날이면
노숙의 아침처럼 저려 오는데
그만
저토록 저무는
강빛의 허리를 베고 누워
푸르러질 줄만 아는
오월의 버드나무처럼 서서
흘러가는 것들은 저리
흘러가라 두고
흐르다 어두워지는
흐르다 저녁의 물빛이 되는
저무는 강물이 되어 흘러만 가는
저 많은 것들을 바라보아도
이제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