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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래 Apr 08. 2024

다시 사람을 만난다면

[낭송 듣기]

https://youtu.be/qQpWF5tCm7Y?si=BQTjAKDEgD5a96wF

다시 사람을 만난다면


은빛 비늘 뛰노는

새벽녘 강여울 어귀를 따라

저녁의 빛깔로 흘러갔으면


흐르다

푸른 이끼 낀 신혼의

섬돌 아래

꽃신 가지런히 벗어놓고

몸을 섞고 잠이 들고


또 다시 사람을 만난다면


산수유 젖망울 터지는 봄날

먼 산에는 흰 눈이 내리고

너무 오래 살아 하얗게 바랜

마디 가늘어진 손을 잡고

눈 속 산수유 따러 가는 길에


사는 것은 말이야


나날의 언덕을

바쁜 뒤꿈치로 오르내리던

굳어진 돌계단 아래

수없는 발길로 다져진

반백의 꽃다지

그게 너 일 수도


이제야 겨우 보이는

너일 수도 있겠다며


사는 것은 말이야


굶주린 꽁지를

하루는 위로

또 하루는 아래로

티끌의 영혼도 없이 까딱이며

산안개 가득한 날

찔레의 새순처럼 우는

딱새일 수도

그게 너일 수도

나일 수도 있겠다며


졸린 하품을 하는 것처럼

자다 눈곱을 떼는 일처럼

다음날 숙취의 단내로 기지개를 켜는

일처럼

아무렇게 말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사람을 만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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