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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래 Aug 10. 2024

"잘 자는 것도 명상이다"

자는 것에 맞춰진 인간을 깨어있도록 하려니 어렵지!

손주가 방학이라 할머니 댁에 놀러 왔는데 늦잠을 잤다. 할아버지는 손주가 자는 이불을 걷고 빨리 일어나라며 호통을 쳤다. 그리고 흐트러진 이부자리를 말끔히 정리해 이불장에 넣었다. 그걸 지켜보던 할머니가 나섰다.  


“애들 늦잠 좀 자면 어때서 그래! 이불 밟고 다닌다고 그게 닳어! 더러워지면 빨면 되지! 애들 좀 편하게 두라고!”     


뒷집의 부부싸움 한 얘기다. 옆에서 내가 지켜봐도 뒷집 아저씨는 늦잠 자는 꼴을 못 보는 아침형 할아버지다. 게다가 주변 정리 정돈이 안 돼 있으면 병이 난다. 우리 집에 와도 흐트러진 것 보이면 스스로 정돈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천성이 게을러 아침잠이 많고, 흐트러져도 그러려니 하고 사는 내 입장에서는 그의 바른생활이 부럽기도 하다. 그런데 숨도 막힌다. 불면증으로 고생해 본 나에겐 더더욱 그렇다. 새벽에 전화해 오늘 뭐 할 거냐고 묻는다. 같이 놀자는 전화다. 전화를 안 받으면 찾아와 마당을 서성거린다. 신경 쓰여 서둘러 잠에서 깬다.





가장 좋은 명상은 잠이다. 실제로 잠을 잘 자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불안감을 없앨 수 있고 정신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연구도 많다. 잠을 잘 때 이전 글에서 설명한 편도체는 안정화되고 전전두엽도 활성화된다. 물론 잘 잤을 때, 수면의 질이 좋을 때 얘기다.


불면증으로 고생해 본 사람들은 안다. 잠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말이다. 오랜만에 겨우 잠들어 단잠을 자고 있는데 옆에 누군가 깨웠을 때 화가 난다. 얼마나 소중히 아끼던 잠이었는데 그걸 망쳐놓았으니 악마와 같다.


밤새 잠을 설치며 일하다 아침에 겨우 잠들었는데, 같이 사는 사람은 새벽잠이 없어 일찍 일어나 늦잠 잔다며 잔소리한다. 그러면서 꼭 하는 말이 “아침잠이 없어야 성공한다!”는 식의 훈계다. 내가 어젯밤 무슨 일을 했고 몇 시까지 있었고 몇 시에 잠이 들었는지를 그는 모른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밤이 돼도 잠을 못 자고 늦게 잠들어 동창이 밝아 노고지리가 울어 대는데도 일어나지 못하는 자신이 미웠다.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처럼 느껴지고 평생 패배자, 아웃사이더로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컸다. 그래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연습도 했고 의지도 불태웠다. 직장생활을 잘하려면 그래야 했기 때문이다. 정말 죽을 만큼 열심히 살았다. 그러다 쉬는 날은 하루 종일 잠으로 때운다. 얼마나 소중한 잠인가? 그걸 옆에서 깨운다. 애들 데리고 놀러 가자고! 죽을 맛이다.


그때 세상의 모든 스피커들은 내 귀에 대고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라고 말했다. “새벽종이 울렸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라는 노래가 전국방방곡곡 울려 퍼지고, 어느 날엔 “아침형 인간이 성공한다!”는 류의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누구는 하루에 4시간만 자고 일해 성공했다며, 잠 많은 나를 주눅 들게 했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이 매사 적극적이며 성실한 삶을 살 확률은 높다. 일을 많이 할 수 있고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다. 당연히 성공적으로 살 확률도 높다.


하지만 올빼미형 인간들은 새벽형 인간과 다른 장점을 가질 수도 있다. 실제로 올빼미형 인간들은 창조성, 영리함, 유머 등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최근 들어 과학에서 잠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한다. 그런 연구들에 따르면 차이는 있지만 사람은 하루 7시간 이상 자야 하고, 아침형이 올빼미형보다 더 좋고 올빼미형이 아침형보다 더 좋다는 점도 없다. 자신의 기질에 맞추어 저녁에 일찍 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위로가 되는 말들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뇌도 발달은 했지만, 근본적으로 원시시대 인간의 뇌 구조와 DNA 구조는 바뀐 것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현대인들의 잠에도 원시인 때 습성이 남아있다.

     

동굴생활을 하는 원시인 가족이나 부족을 생각해 보자. 밤에 모두 잠들어 있다면 짐승이나 적의 침입을 받았을 때 몰살당한다. 그래서 밤에도 누군가는 깨어 있어야 한다. 가족의 반은 잠을 자고 반은 깨어 있든가, 아니면 하나라도 깨어 있어야 적이 침입하면 알아챌 수 있다. 그래서 밤에 일찍 자는 그룹이 있고 늦게 자는 그룹이 있어야 안전하다. 현대인들도 누구는 일찍 자고 누구는 늦게 자야 맞다. 다 같이 일찍 자고 다 같이 일찍 일어난다면 밤은 누가 지켜줄 것인가?


그리고 원시인들은 꼭 밤에 잠을 잤을까? 아니다. 배부르면 자고 배고프면 먹이활동을 했다. 밤에는 어두워 먹이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낮에 배불리 먹고 밤에 잠을 자는 습관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깨어 돌아다니는 것보다 잠자고 있는 것이 맞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깨어 일하는 것보다 자도록 설계돼 있다.


어찌 됐든, 잠 많다고 늦잠 잔다고 스트레스받을 일은 아니다. 하는 일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로 수면 사이클을 바꿔야 한다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잘 자야 한다. 잘 자야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수면의 질을 높이려면 잠들기 전이 중요하다. 하루를 살며 속상했던 것, 억울했던 것, 화났던 것들을 다 고 잠을 청해야 한다. 또 걱정하고 있는 것도 다 내려놓고 잠에 들어야 한다. 이런 것들을 그대로 안고 잠이 들면 자는 순간 그 생각들도 같이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 같이 깨어난다. 그러면 어떻겠는가? 어제 속상하고 억울하고 화나고 걱정했던 것이 오늘 아침에 똑같이 시작된다.     


아침은 새 기분으로 상쾌하게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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